1. 한글의 빼어난 장점은 여러가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손꼽을 수 있는 것은 '정보 전달력'에 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실 때도 어린 백성이 쉽게 익혀서 자기 뜻을 펼 수 있게 하라고 했다. 정인지가 쓴 <훈민정음 해례본>에 따르면 훈민정음은 슬기로운 사람은 아침 나절에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열흘 안에 배울 수 있다. 이렇게 쉬운 문자 해독력 때문에 쉽게 정보를 접하고, 그 정보의 재생산과 전파력도 높다. 하지만 소중화와 한문 숭배에 빠진 조선의 어리석은 선비들은 이런 한글의 장점을 깨닫지 못하고 한글을 뒷방의 아녀자나 사용하는 글로 생각했다. 때문에 조선조 5백년 동안 문자는 오로지 양반 식자들이 독점을 하고, 대다수의 백성들은 문자와 정보로부터 배제되고 말았다. 라틴어에서 해방된 유럽 각국의 언어들이 종교개혁을 시도하고 계몽 사상을 전파하는데 강력한 수단이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쉬운 시간이다. 종교 개혁이 이루어진 해가 1517년인데 반해, 훈민정음을 창제한 해는 그보다 70여년이나 앞선 1443년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한글은 유럽 각국의 언어들보다 일찍 발명이 돼서 조선이 개화하고 계몽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잃은 것이다.
2. 대한제국은 1897년 갑오경장을 단행하면서 그동안 언문 취급 받았던 한글을 '국문'으로 채택하면서 공문서에서 한글을 사용했다. 이후 서양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근대적 학교들이 세워지고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신교육 시스템이 확립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인구의 5% 수준만이 글자를 깨우쳤지만 보통교육제도가 확립된 1920년 대에는 8-9% 수준으로까지 향상되었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 치하 일본은 노골적으로 '민족말살정책'을 펴면서 한글 사용을 정책적으로 금지시켰다. 이 시기에도 한글로 된 신문들이 보급되고, 시와 소설을 쓴 문인들의 노력에 의해 우리 말의 아름다움이 유지된 것은 주목할만하다. 당시 쓰인 동요나 동시들을 보면 한자 개념이 없이 완벽하게 한글로만 이루어져 있다. 한극학회 소속 한글학자들이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조선어 대사전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제의 탄압을 받은 사건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해방 후 문맹율은 대략 78% 였지만(국가정보기록원) 이후 역대 정부들이 문맹 퇴치에 힘써서 현재는 글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제로 상태에 가깝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문맹율을 이렇게 급속하게 떨어뜨릴 수 있는 원인에는 무엇보다 배우기 쉬운 한글이 놓여 있다. 조선 시대 한문의 보급과 대비되는 현상이다. 특히 한글 전용 정책은 한글의 정보 전달력을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한글은 디지탈 시대에 들어서 그 진가를 더욱 발휘하고 있다. 한글은 중국의 백화 문자나 일본의 히라카나 가다카나의 입력 속도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빨라서 정보 생산성도 크게 높이가 되었다. 한국이 급속한 경제 개발을 이룩한 데는 한글의 정보 전달력의 역할을 무시할 수가 없다.
3. 빼어난 한글 덕분에 문맹율은 거의 사라졌지만 현대의 한국인은 거의 독서를 하지 않아 문해력(literacy)의 수준은 OECD 평균에서 크게 떨어진다고 한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글의 의미와 맥락, 표현 등을 전반적으로 이해함으로써 글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런 문해력을 끌어 올리려면 무엇보다 독서가 선행이 되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독서율은 스마트 폰이나 태블릿과 같은 미디어로 급속히 대체되면서 완전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덕분에 한국에서 출판 산업은 이제 사양 산업에 대열에 들어섰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중화 사상과 한자 숭배로 인해 한글을 외면한 것처럼, 현대의 한국인들은 첨단 미디어에 너무 빠져서 종이 위에 쓰여진 텍스트들을 외면하게 된 것이다. 양자의 상관관계나 그 내용이 같은 것은 아닐 지라도 한글 사용이나 한글로 쓰여진 텍스트들이 외면당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4. 문해력이 떨어지면 나타날 수 있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번째는 이해력도 동시에 떨어진다. 남의 말의 제대로 듣고 이해하려는 인내심도 부족해진다. 이해력이 부족하면 아주 사소한 문제 조차 왜곡해서 침소봉대해 진영 갈등으로 비화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한국사회 곳곳에서 빚어지는 문제다. 두번째는 독서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책은 어떤 특정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읽는 경우도 있지만 인문과 예술, 사회와 정치 등 전반에 걸쳐 교양을 넓히는 데도 중요하다. 이러한 교양이 뒷받침되면 보다 폭넓게 인간과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 교양은 당장 눈에 띄는 효과가 없을지 몰라도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수평수처럼 삶의 균형이 잡아준다. 현대의 한국인들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보는 많이 받아들일지 몰라도 그런 정보의 바다에서 옥석을 가릴 수 있는 판단력이 크게 부족하다. 한 마디로 문해력의 부족에 따른 교양의 부족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일종의 악순환 같기도 하다. 책을 읽지 않으면 문해력이 떨어지고 문해력이 떨어지면 교양 수준이 떨어지고, 교양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더욱 책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한국이 외형적으로 크게 발전하기는 했지만, 이런 악순환으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심화된 면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