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어제 오늘 제기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출산율은 OECD에서 맨 꼴찌에 있다. 현재 가임여성의 출산 아동은 0.7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동안 국가가 여러 형태의 정책의 통해 출산율을 높이려고 애를 많이 썼지만 오히려 더 떨어지고 있다. 이런 상태라면 한국은 멀지 않은 장래에 국가가 소멸할 가능성도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이런 비관적 전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출산율 저하의 정확한 원인과 대책이 잡혀 있지 않은 것 같다.
출산율 저하는 선진국들이 접하는 일반적 현상이다. 그럼에도 한국이 유독 심하게 겪고 있는 데는 일반적 원인과 다르게 한국의 보다 특수한 원인이 있다고 본다. 나는 그것을 한국인들의 의식구조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유교 문화의 형식주의라고 본다. 이런 형태의 유교는 텍스트 속에 있고 관련 학자들만이 아는 유교가 아니라 일반인들의 삶 속에 잔존하는 ‘무의식의 유교’라고 해야 할 것이다. 유교의 형식주의는 명실의 차이,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 타인이 보는 것의 차이가 너무 크다. 이러한 형식주의는 세대를 불문하고 나타나는 현상이다. 새로운 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들 역시 자신의 내실과 상관없이 외부에서 보는 이미지의 차이에 민감하다. 젊은 이들이 고급차를 선호하는 경향은 대표적인 과시성 소비라 할 수 있다. 차는 한낱 교통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신의 경제력에 맞춰서 구입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에게 차는 일종의 신분 과시와 직결된다.
우리가 젊었을 적에는 너무 가난해서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할 때도 오늘 날처럼 집과 가사 도구 등을 완벽하게 갖춘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리고 이런 어려움은 거의 대부분의 가정에서 접하는 문제였다. 부모 세대는 어려운 결혼생활을 하면서 살림 살이를 하나 하나 씩 장만하고, 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아파트를 늘려가는 형태로 부를 축적하는 자수성가형이 많았다. 반면 요즘의 젊은 세대는 정부의 출산율 정책으로 여러가지 지원이 많다. 당장 애를 낳을 때 받는 현금 보너스부터 아이를 키우는 과정과 성장하는 과정의 혜택, 교육과 주택 등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혜택을 많이 받고 있다. 아이는 단순히 생물학적인 의미가 갖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생산력하고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런 지원을 하는 것이다. 물론 젊은 세대는 이런 지원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부모 세대의 입장에서 볼 때는 결코 적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가장 큰 유교의 형식주의 문제는 관혼상제에서 잘 드러나고, 그 중에서도 결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드러난다. 일단 혼례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많이 들어가게 된다. 과거에는 소수의 상류 계층만이 호텔 같은 곳에서 호화판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면, 지금은 중하류 층에서도 결혼식 만큼은 남부끄럽지 않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 있는 사람들이 돈을 쓰는 것은 뭐라고 할 수 없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그것을 따라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 "뱁새가 황새 걸음을 하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이 틀리지가 않다. 이런 천문학적인 혼례 비용으로 인해 젊은 세대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경향도 크다. *팔리는 결혼식을 올리느니 차라리 안하고 만다는 것은 젊은 세대들이 가질 수 있는 실용 정신과 너무나 틀리다. 자동차를 과시용으로 생각하듯, 한국의 젊은 세대는 결혼식도 똑같이 생각한다. 혼례 문화를 현실적이고 실용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한, 그들의 짊어지게 될 유교의 형식주의적 혼례의 짐은 더욱 무거워질 것이다. 물론 이것들을 모두 젊은 세대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이것은 부모 세대들이 물려준 부정적인 유산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삶은 자신의 삶이고 책임도 스스로 져야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점에서 주체적인 책임의식이 부족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아예 대놓고 자식들에게 물려줄 재산도 없이 왜 아이를 낳느냐고 말한다. 가난하면 아이를 낳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아이 생산은 오로지 부자들만 가능한 것이고, 빈자들은 그냥 한 세상 살다가 사라져 버려야 한다. 남녀가 사랑을 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데서도 자본의 논리와 불평등이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날 한국 사회에서 출산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마도 젊은 세대들의 이런 생각이 반영돼서 나타나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데 그들의 생각이 이렇다 보니 아이가 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겠는가? 이런 저출산 상태에서도 한국사회의 낙태 비율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한국에서 생명은 철저히 자본 논리의 통제를 받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런 생각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젊은 세대의 무임 승차의 논리가 사실은 더 위험하다. 한 때 금수저 은수저 논리가 유행을 했는데, 이제는 그 정도를 넘어서 부자 집안에 태어나는 것도 능력이라고 하고, 이런 능력이 없다면 아이도 생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자기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연적으로 조성된 조건에 의해 살겠다고 하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자신이 아무런 기여도 없이 만들어진 이런 우연적 삶도 능력이고 역량이라고 하는 데는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한 마디로 무임승차를 하면서 미안하거나 부끄러워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할 텐데 오히려 그것 자체를 자랑하고 떳떳해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한 두 사람의 돌발적 의견이라고 하면 모르겠는데, 다수의 젊은 세대들이 공감하고 동조하고 있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부모 세대들이 열심히 땀 흘려서 이룩한 부와 자유를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고 더 많이 달라 하고, 그것이 없거나 부족한 부모 세대를 비난하는 젊은 세대들의 이런 생각들이 바뀌지 않는 한 출산율 저하도 바뀌지 않을 듯하다. 행복의 기준이 가치있는 삶과 사랑이 아니라 부와 권력에 있는 한 이런 상황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고, 그만큼 한국사회의 미래 전망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 한국이 세계 10위 권 안에 들면서도 ‘헬 조선‘이란 말이 거침없이 나오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