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의 어린 학생들을 기억하며

by 이종철


오늘은 4월 16일이다. 이 날은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35년 전 내가 아내와 결혼한 날이다. 그러므로 매해 이 날은 아내와 나에게는 결혼 기념일이라는 좋은 의미로 다가온다. 다른 하나는 정확히 10년 전 제주로 수학 여행을 가던 안산의 고등학생들이 탄 배 세월호가 목포 앞 바다에서 수장되는 대 참사가 일어났던 날이다. 바로 엊그제 일어났던 사건 같은데,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이 날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에게 참으로 슬프고 비극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좋은 날과 나쁜 날이 한 날에 있으니 이 날을 좋아해야 할지 아니면 슬퍼해야 할지 나 자신도 당혹스럽다. 개인사를 생각하면 당연히 좋아해야겠지만, 그 경우 죽은 학생들과 유가족들을 생각하는 것이 민망스럽다. 그렇다고 1년에 한 번 뿐인 결혼 기념일을 세월호에 대한 슬픈 기억으로 우울하게 보낸다는 것도 민망하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이날은 논리적 모순이나 딜레마와 같이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10년 전인 2014년 4월 16일, 나와 아내, 그리고 딸은 키우던 강아지를 데리고 휴가를 즐기기 위해 서해안 안면도로 가고 있었다. 출퇴근 상황의 고속도로를 피해서 아침 일찍 출발한 덕분에 9시 쯤에는 서해안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차안의 라디오에서 갑자가 속보가 들렸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을 실은 배가 남해에서 사고를 당했는데 해경이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학생들이 무사히 구출되기를 기원했다. 우리 일정 때문에 이후 몇 시간 동안은 이 사건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우리는 미리 예약해둔 안면도의 팬션으로 향했다. 개와 동반해서 가기 때문에 개를 들일 수 있는 펜션이었다. 바닷가 근처에 있는 이 팬션은 우리 3식구가 지내기에 좋을 만큼 전망도 좋다. 우리는 도착하자 마자 먼저 짐을 풀어서 펜션으로 날랐다. 일찍 출발하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탓에 우리는 아침 겸 점심을 만들어 먹었다. 식사 후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TV를 틀었는데 화면 가득 채운 것은 온통 난리판이다. 거대한 세월호가 침몰하는 장면과 그 배를 탈출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화면을 가득채웠다. 그런 장면을 보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전쟁 상황을 보도하듯 다급했다. 분명 오전에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는 해경이 잘 대처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사망자가 수백명이라고 하는 끔찍한 소식만이 반복되고 있다. 바로 이날 한반도 남쪽의 바다에 지옥문이 열린 것이다.



10년이나 지난 사건이지만, 이 사건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아 있고, 그로 인해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슬픔이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어떻게 수백명을 태운 배가 그렇게 빨리 침몰을 할 수 있었고, 그 안에 수백명의 승객들이 타고 있었지만 제대로 구조되지 못한 상태로 수장되었고, 어떻게 배와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함장이 승객을 뒷전에 내버려 둔채 탈출할 수 있었는가? 사고가 터지자 수많은 전문가들이 나와서 에어백이 어떠니, 선박 평형수가 어떠니 하면서 연신 떠들었지만 하나같이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식으로 헛다리를 짚었는지, 해경을 위시한 정부 당국은 대형 참사가 벌어지도록 속수무책으로 지켜만 보았는지, 언론은 왜 그렇게 확인되지도 않은 소식들로 도배해서 지켜보는 유가족들과 국민들의 애끊는 가슴만 더 힘들게 했는지, 꿈많은 청소년들이 해양 사고로 대거 죽은 이 사건이 진행되면서 왜 이 사회와 국민들이 극도로 분열되고 갈등을 빚었는지, 그리고 왜 여전히 그때의 감정 응어리들이 풀리지 않고 있는지, 이런 엄청난 사고를 당하고서도 과연 이 사회의 안전 불감증이 해소되고, 안전 대책이 잘 정비되었는지, 그렇다면 서울같은 대도시 한 복판인 이태원 골목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사건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왜 허구 헌 날 유사 사건들이 빈발하고 되풀이 되고 있는지. 참으로 이런 질문을 하다 보면 끝이 없을 정도다. 과연 세월호 대참사를 겪은 후에 이 사회가 조금이라도 달라졌는가?



세월호 침몰로 죽은 어린 학생들이 살아 있었다고 한다면 지금쯤은 20대 중반을 넘겨 한창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거나 새롭게 시작한 사회 생활로 분주한 모습일 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잃은 유가족들은 1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깊은 슬픔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부모가 죽으면 청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처럼, 그때의 기억은 평생을 같이할 것이다. 꽃같은 청춘들이여! 어찌 우리가 그대들을 잊을 수가 있을까? 참으로 미안하고 또 미안하구나. 부디 저승에서라도 그 차디찬 바다에 대한 기억을 거두고 편히 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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