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서 출판

by 이종철

오늘 모 대학의 철학교수와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그동안 써왔던 논문 모음집인 <헤겔의 정신현상학 연구>(가칭)를 출판할 마땅한 출판사가 없을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당장 돌아오는 말이 힘들 것이라고 한다. 외국 책을 번역하는 것 말고는 국내 필자를 기피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분위기를 한 두 번 경험하는 것이 아니지만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자생적인 지적 풍토를 조성하려고 애를 써야 할 터인데, 여전히 외국의 필자들을 상전 모시듯 하고 번역서만 내려는 정신적 식민지성은 세월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는다. 철학이란 학문은 다른 어떤 학문들 보다 '주체성'을 요구하는 데, 한국에서는 주체성을 강조하면 오히려 외면당할 뿐이다.

이런 풍토 속에서 국내 필자에게는 그저 잘 팔리는 입문서나 대중서만 요구할 뿐이다. 한겨레를 위시한 대부분의 신문의 서평들도 거의 번역서 위주이고, 중견 출판사들도 오로지 번역서만 밝힌다. 그나마 학술서를 낼 수 있는 대학의 출판사들도 거의 자비 출판이다. 이제는 돈이 없이 없으면 연구도 할 수 없고, 연구서들도 출판을 할 수 없는 세상이다. 가뜩이나 인문학을 홀대하는 분위기에서 자생적인 국내의 필진들도 외면한다면 도대체 이 땅에서 우리의 어떤 철학이 성장할 수 있겠는가? 번역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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