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과 철학의 식민화

by 이종철


근대화와 자본주의를 앞서 이룩한 유럽은 비유럽을 대상화하고 식민지화했다. 첫번째가 아프리카이고, 다음으로 중동의 이슬람권이고, 마침내 중국과 일본도 자신들의 영향권 안으로 끌어 들였다. 조선은 쇄국주의 정책 덕분에 시기가 다소 늦었지만 여기서 예외는 없었다.


아시아 권에서는 '탈아입구'를 외치며 일본이 가장 빠르게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여 근대화에 앞장 섰다. 일본의 근대화 모델은 그 이후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에 영향을 미쳤다. 이제 중국은 미국과 양대 강국을 이루면서 경쟁을 하고 있고,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은 경제, 과학, 스포츠, 외교 등 여러 분야에서 미국을 위시한 유럽권과 거의 비슷하게 경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여전히 심하게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부분이 있다. 학문과 사상의 분야에서 영미권이 독주를 하는 현상은 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나마 일본이 명함을 내밀고는 있지만, 영미권의 시각에서는 무시할 정도였다. 그들은 이런 현상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B. Russell이 1945년에 <서양철학사>를 내면서 서양을 동양에 대해 상대적 개념으로 인식을 한 것은 어찌보면 커다란 양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사상과 철학을 이끌어 가고 있는 유럽과 미국의 위상은 요지 부동이다. 사상과 철학의 분야에서는 여전히 제국주의가 지배하고 식민주의가 일상적인 현상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고 한 라투르의 표현을 빌린다면, "우리는 식민지에서 해방된 적이 없었다." 식민지의 지식인들은 앞장 서서 제국의 철학과 사상을 수입해서 번역하는 일에 평생을 받치고 있다. 그들에게 철학이란 제국의 사상과 철학을 번역하고 해설하고 해석하는 일이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아직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고, 이런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오늘 영국의 한 출판사에서 기획 시리즈로 나온 'Key Contemporary Thinkers'를 보니까 비유럽권 사상가나 철학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들에게 Contemporary는 당연히 Euro-American만 포함된다. 다른 분야는 그렇지 않은데 철학과 사상의 분야에서는 이렇게 굳어진 철옹성이 조금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이 철옹성을 비서구권의 지식인들이 아주 강고하게 떠받치고 있는 한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마치 출산율이 세계 최저이고 고령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수도권과 서울 강남권의 아파트가 강세를 부리는 현상과 같지 않을까? 지방의 부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서울 강남으로 진입하려고 애를 쓰는 한 이곳의 아파트 가격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똑 같은 현상이 제1세계의 사상과 철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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