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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철 Jul 17. 2024

인간은 기록하는 존재(Homo Scribit)

문자와 기록이 없었다면 인간의 문명과 역사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차별되는 지점이 바로 문자의 발명이고, 이 문자를 통해 인간은 기록을 하면서 문명과 역사를 만들어 냈다. 때문에 기록이 없었다면 인간의 문명과 역사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사정은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기록이 없다면 그의 삶은 시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오직 기록이 있을 때만 그의 행위와 삶이 의미를 가진다. 내가 무엇을 했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무엇을 한 것을 기록을 했을 때 비로소 그것은 사적인 경험을 떠나 문자의 도움으로 보편적 의미를 갖게 된다. 종종 왕년에 내가 무엇을 했다고 자랑을 하거나, 멋진 관광 여행을 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놓지 못한다면 자신의 주관적 체험 이상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만들어 보았다. 인간을 동물과 구별하는 인간만의 고유한 종차에 대해 과거의 많은 철학자들이 인간을 이성적 동물(Homo Sapiens)이라고 했다. 이때의 이성은 단순한 생각 능력이 아니라 반성적인 생각 능력이다. 호이징가(J. Huizinga, 1872-1945)는 '놀이'에서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규정해서 인간을 놀이하는 동물(Homo Ludens)로, 또 어떤 이는 윤리와 규범을 만드는 데서 윤리적 인간(Homo Ethicus)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의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하느냐를 보여준다. 나는 이런 정의 외에 인간을 '기록하는 동물'(Homo Scribit)이라 부르겠다. 이 용어는 별로 주목되지 않은 개념이다. Scribit는 쓰고 기록한다는 의미의 라틴어이다. 이것을 인간을 가리키는 Homo 합쳐서 기록하는 인간, Homo scribit라 한 것이다. 호모 스크리보, 부르기도 좋다. 인간의 정체성을 기록하는 존재로서 정의하는 것 만큼 멋지고 적실한 개념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철학적 개념을 만드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창조이자 인간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확장시키는 일이다. 앞으로 이 개념의 보편적 의미를 나 나름대로 해석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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