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철 Jul 30. 2024

한국의 양궁과 인문학

한국의 양궁이 올림픽에서 10 연패의 쾌거를 달성했다. 다른 어떤 나라, 어떤 종목에서도 가능하지 않았던 10연패이다. 경쟁이 치열한 국제 경기에서 36 년을 빼먹지 않고 정상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거의 신적 경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36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한국의 양궁 스타들의 얼굴이 바뀌었다. 하지만 스타들이 바뀌어도 한국 양궁은 끊임없이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 내면서 변함없이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한국 양궁 선수들의 정신력일까, 아니면 타고난 소질일까 아니면 한국의 빼어난 선수들을 배출하는 경쟁과 뛰어난 지도자 그리고 훈련 시스템일까? 많은 이들이 한국 선수들을 배출하는 특별한 시스템을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것이 공개되어 있는 오늘날 한국만의 고유한 시스템을 강조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굳이 이유를 대자고 하면, 자질과 정신력, 합리적인 경쟁과 뛰어난 지도자, 특별한 훈련 시스템 등이 함께 작용하면서 10 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합쳐서 한국 양궁의 위대한 잠재력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잠재력이 다른 분야에서도 얼마든지 똑같이 발휘될 수 있으리라 본다. 반도체와 자동차를 위시한 한국 경제, K-POP을 선두로 한 한류 등 영역과 분야를 가리지 않고 두루 그 잠재력을 떨치고 있다. 그렇다면 학문과 사상의 면에서도 그것이 가능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그런데 유독 인문학과 철학의 분야에서는 그런 역량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분야는 여전히 해외의 수입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에드가 모랭이 지적하듯 스타도 없다. 왜 그럴까? 아마도 여기에는 쉽게 해소되지 않는 특수한 원인이 있을지 모른다.

지나친 단순화일 지 몰라도 나는 이것을 이조 5백 년과 일제 식민지 40년을 거치면서 유전자적으로 각인된 '사대주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선은 사농공상이라고 해서 사회 조직의 최 상층부에 문자를 다루는 사대부를 놓고, 한 사회의 사회적 부를 생산하고 증가시키는 공업과 상업 종사자들을 아래에 두고 하대했다. 조선이 500년의 문화와 역사를 자랑하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빈곤과 백성들을 쥐어짜서 운영하는 약탈 시스템에 기초해 있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사대부들만이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 대부분의 백성들은 그 체제하에서 억압받고 수탈을 당할 뿐이다.


식민지와 전쟁을 거친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억압되었던 민중의 잠재력이 배출될 수 있는 새로운 국가 운영의 시스템과 한글에 기초한 정보혁명 때문이다. 말하자면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와 박정희식 수출 위주의 개방적 경제 시스템이 큰 역할을 했고, 정보의 자유로운 소통을 가능하게 한 한글 사용으로 인해 문맹률을 낮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물론 이런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해도 자동적으로 그것이 발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한국인들의 근면과 교육열도 크게 작용을 했다. 이런 원인들에 공통적인 것은 조선 500년 동안 사농공상의 억압적 이데올로기와 한문 숭배와 사대주의, 그리고 폐쇄적 국가 운영 등과 같은 시스템 등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조선의 방식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북한이 세계 최빈국에다 폐쇄적인 국가 운영과 세습 독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조선의 이데올로기 역할을 했던 문사철은 그 대상을 중국에서 일본 그리고 미국으로 바꿔 가면서 여전히 과거의 사대의 망령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사대는 거의 유전자적으로 각인된 것인데, 이것은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생물학의 법칙조차 위배하는 수준이다. 한국의 인문학과 철학이 사대의 망령을 벗어나지 않는 한 그것들은 초라한 오퍼상과 고물상의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마르크스가 자신감을 결여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한 말이 있다. '머리를 들라!' 마찬가지로 한국의 인문학자들과 철학자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들의 머리를 들라!'

작가의 이전글 한국의 사상가들 탐방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