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을 보다 보니 전문 스포츠 선수들의 기량이 대단히 뛰어난 것 같다. 몇 년을 두고 갈고 닦은 솜씨를 단 몇 분 혹은 단 몇 차례에 집중적으로 표현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학자들이 배울 부분도 많다고 생각한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가 무얼까? 기예(techne)나 경험(Experience)에 있을까 아니면 시각(Perspective)이나 시야(Vision)에 있을까? 기예나 경험은 절대 시간을 연습이나 훈련에 투입할 경우 어느 정도는 극복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자기 하는 일을 별도로 가지고 있는 아마추어가 밥먹고 그 일만 하는 프로만큼 절대 시간을 투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늘 날 모든 분야가 전문화된 상태에서는 전문 기능인 양성 과정과 라이센스도 무시할 수 없다. 법학이나 의학이 그렇고, 예능 분야도 큰 차이가 없다. 대부분의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요구하는 것도 그런 전문성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기예는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할지 몰라도, 그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라이센스의 벽은 뚫기가 힘들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라이센스가 전문성을 보호하는 벽으로 작용하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물론 인문 사회의 많은 분야들의 현실은 다를 수도 있다.
시각이나 시야는 하루 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 사실 이 부분에서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가 크게 날 수 있다. 전문 학자들은 (모든 학자들이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다) 새롭게 논문을 쓸 때는 적어도 그 부분의 연구사와 동향을 먼저 체크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아마추어는 대부분 자기 문제만 골몰하고 그 문제에서 깊이 파고 들어갈 수는 있지만 다른 분야나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기예와 경험이 쌓이고 연구에 많은 시간을 투입하다 보면 다른 사람이나 다른 분야에 대한 시야가 생길 수 있다. 오늘 날에는 인터넷이 발달하고 집단 지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이런 시야 문제는 어느 정도 극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아마추어와 프로 사이에 절대적인 차이가 존재하는가? 그 차이가 있다면 어디에 있을까? 라이센스의 보호가 없다 해도 양자의 차이가 절대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오늘 날 대학의 전문 연구자들이 아마추어들을 압도할 수 있는 전문성과 시야를 담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특히 페이스 북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다 보면 이런 차이는 더욱 무색한 감도 없지 않다. 대학교수들은 고액의 연봉을 받고 있는 전문 연구자들이지만 취미로 특정 분야에 깊이 파고드는 아마추어들의 깊이와 시야도 만만치 않다. 후자는 자신들이 쓰는 글과 호구지책이 동일하지 않다는 차이가 있음에도 그렇다.
오늘 날 전통적 의미의 공간에 제약된 강의실들이 개방된 싸이버 강의실들에 의해 서서히 대체되고 있다. 물론 세계의 유수한 대학들이 이런 형태의 강의실 개방에 앞서고 있다. 그 점에서 전문 연구자들의 전문성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취미나 기타 다른 이유로 특정 분야에 깊이 파고드는 아마추어 연구자들이 필력도 갖추면서 전문 연구서를 내는 경우도 많아 지고 있다. 이제 한국에서도 프랑스처럼 대학 연구실 바깥에서 이런 형태의 '에끄리뱅'( Ecrivain)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현실이 적어도 인문 사회 과학 분야에서는 낯설지 않다. 특히 한국의 대학은 비정규직 시간 강사라는 주변부 지식인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이 생계에 떠밀려 전문 '에끄리뱅'으로 활동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기도 하다. 이들은 전통적 의미의 학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문 연구와 호구지책이 불일치하는 경우들이 많다. 나는 그들이 대학 강의에 연연하지 말고 더욱 대학 바깥으로 진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문제는 그들이 인세만 받고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있는데, 한국의 독서 풍토에서는 여전히 요원한 현실이라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스포츠에서는 뚜렷하지만 학문 연구와 글쓰기에서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가 무엇인지 분명하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