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의 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병폐 중의 하나가 컴플렉스라고 생각한다. 적당한 컴플렉스는 자기 발전에도 상당히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지나친 컴플렉스는 자기 한계를 스스로 만들어서 자기발전을 막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런 컴플렉스 현상은 머리 좋은 사람들에게서 더 많이 발견된다. 식민사관의 원조 격인 이병도는 조선사 편수회에서 일인 학자들 밑에서 컸고, 서울대 국사학과가 그의 영향권 하에서 성장했다. 이들이 식민사관의 전통을 이어 온 것도 이런 지적 컴플렉스의 자장 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서울대 출신의 뉴라이트 학자들 역시 외색에 쉽게 빠지고 친일에 굴복했다. 어설픈 두뇌 였기 때문이다. 뉴라이트의 사상적 지도자인 안병직은 80년대 대표적인 식반론자였고, 그의 제자이자 동료인 이영훈은 안병직이 세운 낙성대 연구소의 핵심 멤버이자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이다. 안병직은 80년대 후반 이념적 세계관의 붕괴에 정신적 공황을 느끼면서 그 공백을 자유주의에 뿌리를 둔 뉴라이트 이념으로 대체시켰다고 말한다. 나는 이런 정도의 변신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그 당시 많은 진보주의자나 맑스주의자들이 여러 형태로 사상적 전향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뉴라이트가 왜색으로 자신들의 색깔을 도배하고 친일로 경도한 것은 사상적 전향으로만 보기 힘들다. 내가 보기에 그들이 이런 식으로 변질된 것은 일본의 문화나 사상에 대해 가진 컴플렉스가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조선의 천재 소리를 듣던 최남선이나 이광수의 경우에도 그들이 친일로 전향한 데는 일본의 문화나 사상에 압도된 컴플렉스가 컸다. 그들의 밑바탕에 자기 한계에 갇힌 깊은 컴플렉스가 작용한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불신과 자신감 부족의 컴플렉스가 그것을 대체하거나 채워줄 수 있는 자기 바깥의 학문이나 사상에 대한 숭배로 이어진 것이다. 이런 식의 숭배는 뉴라이트 뿐만 아니라 오늘 날 인문학계에 팽배한 구미 시상과 철학에 대한 숭배에서도 똑 같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왜 뉴라이트는 욕을 먹고 미국과 유럽에 대한 숭배는 학문의 발전을 위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내가 보기에는 정당한 근거가 없다. 한국의 지식인들, 학자들의 밑바탕에는 조선의 사대 이래로 끊임없이 사대 컴플렉스가 잠재해 있다. 이런 사대 컴플렉스는 개인이 부인하는 것과 상관없이 그들을 얽매이고 있다. 컴플렉스는 물론 자극의 계기일 수 있지만, 지나친 컴플렉스는 자기 검열이자 확장에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 오늘날 한류 문화는 이런 컴플렉스를 극복해서 자신의 역량을 맘껏 세계에 펼치고 있는데 왜 뛰어난 머리를 가진 지식인들과 인텔리들은 스스로를 이런 컴플렉스에 가두고 있을까? 나에게는 그게 수수께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