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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철 Aug 21. 2023

글을 쓰는 이와 읽는 이


글을 많이 쓰다 보면 여러가지 주문 사항을 접하는 경우가 있다. 나의 경우 내용 보다는 형식에 대한 요구가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요구는 제발 글을 짧게 써 달라고 하는 것이다. 정중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구체적으로 지시하듯 이야기하면서 짧은 글을 써야 하는 것이 당연한듯 요구하기도 한다. 이럴 때 내가 하는 답변은 한결같이 그럴 맘이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짧게 써 달라는 요구를 내가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글을 읽는 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쓰는 자의 입장에서 쓴다. 나는 내가 좋아서 글을 쓰는 것이지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쓰는 것은 아니다. 잘 보이고 안 보이고는 글의 부수적 효과일 뿐 일차적으로는 글을 어떻게 쓰느냐가 나에게는 더 중요하다. 이런 말이 야박하게 들릴 지 몰라도 쓰는 자의 내적인 열정과 문제의식과 노력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본다. 읽는 이의 요구와 욕구에 맞추다 보면 결국은 외면당할 수도 있다.




둘째로 짧은 글은 그냥 남는 것이 없다. 그런 토막 글들은 그냥 그 때만 소비될 뿐 나중에 책으로 묶으려 해도 묶을 수가 없다. 적어도 책으로 묶기 위해서는 최소한 원고지 15매 이상은 되어야 한다. 나는 당장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글을 쓰기 보다는 나중에 책으로 엮을 것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글을 짧게 쓰려는 마음이 전혀 없다. 내가 쓰는 글은 적게는 15매 정도에서 많게는 30여매 정도이다. 조만간 나는 이런 글을 중편 소설 쓰는 정도의 분량으로 늘릴 생각이다. 그럴려면 대략 원고지로 50-70매 정도는 되어야 할 듯하다. 이 정도는 되어야지만 어떤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나는 읽는 이들에게 무언가 만족감이나 행복감을 주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나는 글이 마약이 주는 느낌처럼 무언가 행복감이나 도취감을 주기 위해서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주제의 특성 상 위안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내 글의 대부분은 냉정한 비판이 더 많다. 이런 말을 들으면 읽는 이들에게 그런 감정을 주지 않는다면 누가 그런 글을 읽느냐고 힐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욕망에 타협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내가 예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글은 읽는 이들에게 고통과 불편을 줌으로써 정신적으로 고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글을 읽는 다는 것은 백화점에 널린 화려한 상품을 쇼핑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틀리다. 내가 글을 돈을 받고 쓰는 것이 아닌데, 내 글을 창녀가 가랑이 벌리고 손님 받듯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철학자 니체는 자기 글을 봄 날의 천둥과 번개로 생각했다. 이런 글을 통해 그는 편견에 찌들고 게으르고 나약한 인간들의 정신을 일깨우고자 했다. 내가 니체와 똑 같을 수는 없어도 그 정신은 본 받으려고 한다. 오늘 날 라이터들(writers)은 너무 쉽게 읽는 이들의 욕망에 굴복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 날 독자들은 글을 너무 쉽게 소비하려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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