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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철 Aug 21. 2023

별 이야기


별의 이미지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린 시절 마당의 평상에 누워 보던 밤하늘의 별을 생각해 보라. 보석처럼 반짝이던 은하수, 이따금 밤하늘을 가르는 별똥별, 이름도 모르는 별자리들을 세면서 밤 새워 이야기하던 시절을…. 그 시절 동심은 배는 고팠어도 얼마나 맑았던가? 별은 이 대지에 묶여 있던 우리 영혼에 상상의 날개를 달아준다. 별은 저 영원한 신화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불빛이 아니던가?



“저 별은 나의 별 / 저 별은 너의 별 / 별빛에 물 들은 밤같이 까만 눈동자 / 저별은 나의 별 / 저별은 너의 별 / 아침 이슬 내릴 때까지….”(윤형주, <저별은 나의 별> 중에서) 해변 가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기타 소리에 맞춰 부르는 윤형주의 별은 그 별빛에 물든 밤같이 까만 눈동자의 소녀를 떠올리게 한다. 그 소녀와 나누던 이야기, 함께하던 노래, 나누던 편지…. 그 소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별이 된 시인 윤동주의 별을 헤다 보면 끊임없이 생각이 떠오른다. 그것은 다른 이가 결코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생각이리라. 그 별 속에는 추억이 있고, 사랑이 있고, 쓸쓸함과 동경이 있다. 그런 생각이 뜨고 지다보면 시상도 떠오르지 않는가? 아, 어머니, 어머니. 내 영혼의 영원한 동경이고, 영원한 안식처인 어머니.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별 하나에 추억과 / 별 하나에 사랑과 / 별 하나에 쓸쓸함과 / 별 하나에 동경과 / 별 하나에 시와 /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윤동주, <별 헤는 밤>)




별이 쏟아지는 밤길을 걷는 연인의 마음속에는 어떤 별이 있는가? 논두렁길을 다정히 손잡고 걷는 연인들을 생각해 보라. 말은 조근조근하지만 심장은 쿵쾅거린다. 그 길이 끝나는 곳에 자그마한 언덕이 보인다. 남자는 이슬이 맺힌 그곳에 하얀 손수건을 깔고 여자를 앉힌다. 이미 그의 마음속에는 결심이 서 있다. 이 고요한 별 빛 아래에서 그녀를 향한 사랑을 고백하겠다고…; “앉아요, 제시카. 저 하늘의 바탕을 보아요. / 빛나는 황금빛 큰 접시의 무늬로 총총히 상감되어 있는 걸. / 그대에게 보이는 천체는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 운행 중에 천사가 하듯 노래하지 않는 게 없소. / 그런 화음이 불멸의 영혼 안에도 있어요. / 하지만 이 진창 같은 썩어버릴 육신의 옷이 두껍게 / 그것을 덮고 있는 동안은, 우리는 그 화음을 들을 수 없다오.”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보석처럼 박힌 밤하늘의 별들의 합창이 들리지 않는가? 우주의 화음. 피타고라스의 수와 질서, 그리고 영혼들. 그런 불멸의 질서와 화음이 어찌 우주에만 있겠는가? 우리의 영혼도 본래 그곳에 거주하던 것이거늘. 하지만 이 썩어 버릴 육체의 옷이 덮고 있는 동안에 어찌 우리가 영혼의 화음을 들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당신이여, 사랑을 하는 순간 나의 영혼은 육체의 감옥을 벗어나 당신의 영혼과 하나가 되었다오. 본래 에로스의 신은 영혼의 이데아를 사모하지 않았던가? 사랑하는 연인들은 그렇게 영혼이 하나 됨을 경험한다.




이데아의 세계를 떠난 영혼은 끊임없이 상실된 그 세계를 동경한다. 영혼의 본질은 동경(Sehnsucht)이다. 이 혼탁한 세속, 번뇌의 세계를 영혼은 끊임없이 벗어나고자 한다. 철학은 죽음의 연습, 매일같이 썩어 버릴 육신의 옷을 벗어 버리고자 한다. 하지만 어떻게 가능한가? 조지훈의 별은 이 번뇌를 벗어던지는 법을 알려준다;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조지훈, <승무> 중에서)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세속과 탈속이 어디 둘이겠는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것, “번뇌는 별빛이라.”




칸트의 별은 그 별을 내 마음 속으로 가져온다. “밤하늘에는 빛나는 별이요, 내 마음 속에는 양심.”(칸트) 밤하늘에 별이 빛나는 것처럼, 내 마음 속에는 ‘양심’이라는 ‘도덕률’이 너무도 분명하게 존재한다. 양심(Gewisse)이 무엇인가? 데카르트는 의심할래야 의심할 수 없는 것을 진리의 징표로 삼는다. 그 의심할 수 없는 확실성(Gewissheit)이 양심과 같은 뿌리를 갖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칸트는 “밤하늘에는 빛나는 별이요, 내 마음속에는 빛나는 양심”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당신은 그 별이 더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별이 보이지 않는 세상, 별을 상실한 세대의 슬픔. 그래서 우리는 고향을 상실한 종(種)이라고 말한다.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의 슬픔이여(프란츠 파농). 그래서 윤 동주는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를 부르는가?




헝가리의 철학자 루카치는 ‘별만 보고서도 목적지를 찾아가던’ 행복한 시대를 말한다. 영혼의 빛과 세계의 빛이 하나이던 시대, 별빛을 보면서도, 나침판과 지도만 의존하고서도 가야만 하던 길을 찾을 수 있던 시대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떨어져 있던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살면서도 늘 이 낯선 세계 속에서, 우리는 더는 행복하지 않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한데, 왜냐하면 영혼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은 별들이 발하고 있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G. 루카치, 『소설의 이론』)



고흐의 별은 얼마나 몽상적인가? 이 세계에서 행복을 느끼기에는 이 세계가 너무 외롭고, 이 세계를 그대로 보기에는 이 세계가 너무 낯설다. 별이 빛나는 그의 밤은 낯설고 외로운 세계를 넘어서 몽환(夢幻)의 세계로 이끈다. 그의 꿈은 우리의 꿈과 다르리라. (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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