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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철 Aug 21. 2023

김훈 작가와 김민웅 교수 모두 다 틀렸다!


1. 중앙일보의 '내새끼 지상주의 파탄'(https://news.koreadaily.com/2023/08/03/society/generalsociety/20230803140047173.html) 에 나온 김훈의 논지는 간단하다. 그는 서이초등학교의 젊은 여교사의 죽음에 절규하는 교사들의 집단 농성을 취재하면서 그것의 핵심 본질을 '내새끼 지상주의'로 규정했다. 여교사의 죽음은 학부모의 악성 민원 때문이며, 이는 "한국인들의 DNA 속에 유전되고 있는 ‘내 새끼 지상주의’" 에 기인한다고 보았다. 이런 태도는 부와 권력을 가진 층에서 더욱 잦고 위협적이며, 이로 인해 공동체의 가치가 완전 훼손되었다고 본 것이다. 이런 논지 끝에 김훈은 정치적으로도 예민한 조국과 그의 부인을 끌어들인다. 그들이야말로 '내새끼 지상주의'로 인해 '영세불망(永世不忘)의 지위에 오른 인물'이란 것이다.






[김훈 특별기고]'내 새끼 지상주의'의 파탄…공교육과 그가 죽었다              

━ [특별기고] 소설가 김훈, 교사 집회현장을 가다 지난달 29일 오후 2시에 전국 교사 3만여 명이 서울 광화문 앞 거리에 모여서 ‘교육권 보장’을 외쳤고, ‘악성 민원’에 시달...



2. 사실 김훈의 논지는 일단 여교사 죽음의 본질을 '내새끼 지상주의'로 본 데서 피상적일 뿐 아니라, 조국 부부를 끌어들여 그것을 완성하려 한 데서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다. 자기 새끼를 잘 먹이고 일등으로 만들려고 하는 욕망은 한국 부모들만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의 보편적 욕망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오래 전 플라톤은 가족의 사적인 욕망이 공화국을 망칠 수 있다고 해서 무리하게 '가족 공유제'를 주장한 바 있다. 헤겔 역시 내 새끼나 내 가족만 우선하려는 여성들의 사적 욕망을 '여성의 영원한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그러므로 문제의 본질은 '내 새끼 지상주의'가 아니라 그런 사적 욕망을 법적이고 제도적으로 막아내지 못한 데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사적 욕망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이며, 보다 중요한 것은 학교 담장을 넘도록 그것을 방치한 책임이 훨씬 크다.



3. 특히 교육열이 강한 한국의 엄마들의 욕망을 교사 개인이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벽이 높다. 그러한 욕망은 한국인의 높은 교육열로 치장되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막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그것은 학교 당국이나 전교조나 교원 단체, 그리고 교육부 등이 나서서 법적이고 제도적으로 막아줘야 할 부분이다. 왜 학생들 가르치기도 쉽지 않은 일개 교사를 학부모들의 이런 이기적 욕망에 맞세우려 하는가? 교육 현장에서 오랫동안 교육 현실을 개선하고 교권 보호를 외쳐왔던 전교조는 도대체 이런 문제들을 두고 무엇을 했는가? 도대체 학교 당국이나 교육부는 이런 현상이 빈발하도록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이런 문제들을 외면한 '내 새끼 지상주의'는 생물학적 환원주의로 교육 문제를 왜곡하는 위험한 논리이다.




4. 이번 교사들의 집단 항의 농성이 정치적으로 왜곡될 것을 우려해 일체 정치인의 개입이나 정치적 발언을 차단하려한 농성위의 충정은 이해할 수 있다. 시위 현장에 정치인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김훈이 그것을 정치 부재나 실종으로 보는 것도 지레 짐작이다. 마찬가지로 교사의 죽음을 '공교육 의 죽음'으로 끌고 가려는 것도 위험한 논리이다. 사실 한국의 '공교육의 죽음'은 훨씬 전부터 이야기된 것이고, 그 핵심도 학부모들의 학사 행정 개입 보다는 훨씬 더 뿌리가 깊고 광범위하다. 그것은 과도한 입시 위주 경쟁으로 인해 교육을 사교육에 맡겨 버린 학교 현실에 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교사들에게도 막중한 책임이 있다. 그런데 그 문제를 제쳐 놓고 은근 슬쩍 젊은 여교사의 죽음을 공교육의 죽음으로 바꿔치려려는 것은 사태의 왜곡이나 다름없고 무책임한 것이다. 참으로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서 교사들 역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하며, 만약 그 과정에서 학부모 민원이 방해가 되었다고 한다면 학교가 제도적 차원에서 막는 것이 순리다.




5. 김훈이 '내새끼 지상주의'를 조국 부부로 물타기하면서 완성하려 한 것에 대해 김민웅 교수가 발끈한 것(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522)은 나름 일리가 있다. 난데 없이 조국 부부를 소환한 것도 문제지만 같은 논리로 정순신 이동관을 빼는 것은 편파적인 논리라는 것이다. 이런 볼멘 비판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지만 '영세불망'이라는 수사적 표현을 쓴다면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만큼 조국 부부가 미친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김민웅은 공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치를 배제할 수 없는 현실을 잘 파악했다. 하지만 김민웅이 공교육의 문제를 일관성 있게 파헤치지 못하고 엉뚱하게 김훈에 대한 인신 공격성 발언으로 몰고 간 것은 실책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런 배경에는 평소 김훈 작가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탓이 있을 것이다. 김민웅은 엉뚱하게 논지를 비약시켜서 지식인 김훈의 파탄 운운하면서 <칼의 노래>에 나온 이순신의 감정 묘사 까지 시비를 걸고 있다. 왜적과 선조에 둘러쌓여 이순신이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 것은 오로지 김훈의 해석일 뿐 그것을 제 3자가 가타부타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시비 건다고 하더라도 왜 여기서 하는 지가 설득력이 없다. 논쟁에서 인신 공격을 시도하는 것은 아주 궁박한 오류일 뿐이다. 진영 논리가 앞선 탓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칼의 노래' 지은 김훈, 그의 붓이 부르는 슬픈 노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중앙일보에 실린 ‘내 새끼 지상주의의 파탄’이라는 김훈의 글은 교사들의 입장을 옹호하겠다고 쓴 칼럼으로 보인다. 그것도 ‘특별기고’라는 대접까지 받았다. 그런데 읽어 가다가 도중에 이게 뭐지? 하게 된...



6. 김훈의 '내 새끼 지상주의의 파탄'이란 말은 표현 상으로는 강렬할 수 있을 지 몰라도 과녁을 잘 못 맞춘 것이다. 김웅의 김훈 비판 역시 필자가 보기에 감정이 앞서다 보니 정작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지 못했다. 만약 지식인 김훈의 글을 파탄이라고 한다면, 김웅의 비판 역시 파탄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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