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글

by 이종철

요즘은 글을 쉽고 분명하게 쓸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글이 약간만 난삽해져도 읽는 이들에 외면당하기 쉽다. 그래서 그런지 신문의 논설이나 평론, 그리고 대중을 상대하는 글들은 점점 단문체를 지향하고 있다. 이런 글들은 대부분 의미가 일의적으로 규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적다. 그러다 보니 생각도 단순화되고 일방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글들이 오랫동안 살아남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글들은 생활 필수품들이 소비되듯 즉각적으로 소비되고 곧 잊혀진다. 지금처럼 수많은 글들과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고전은 수많은 세월을 거치고 수많은 언어들로 번역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책들을 말한다. 이런 책들은 그 내용이 뒷받침돼서 그렇겠지만 절대로 일의적으로 해석되는 경우는 드물다. 고전에 대한 해석은 역사적으로 수도 없이 다양하게 내려오는 경우들이 많다. 해석은 깊이가 없으면 이루어질 수가 없다. 4대 종교의 경전은 말할 것도 없고 동서양의 수많은 고전들이 오랫동안 생명력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한 해석들이 끊임없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들이 이어지면서 원전을 다시금 조회하도록 만든다. 왜 이 시대에는 이런 글들을 쓰지 못하는가?


쉬운 글이 반드시 가벼운 글은 아니다. 형식은 쉬운 글이어도, 내용은 얼마든지 깊이 있는 글일 수 있다. 쉬어 보여도 이런 글은 깊이가 있고, 해석의 여지가 많을 수 있다. 이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깊은 사색과 통찰이 있어야 한다. 시쳇말로 내공이 없으면 쓸 수 없는 글이다.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종사한 사람들의 행동은 결코 복잡하지 않다. 봄에 배고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했기 때문에 그의 생각이나 동작은 아주 단순할 수 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글쓰기에서도 이런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날 도하 일간지의 칼럼니스트들을 포함한 많은 글들은 그저 겉으로 드러난 형식만 모방할 뿐 통찰의 깊이는 거의 없다. 그래서 내가 그런 글들을 보면서 ‘원숭이 흉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내가 주장하는 ‘에세이철학’은 쉬우면서도 깊이와 통찰을 지향한다. ‘에세이철학’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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