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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정신현상학>의 영향사

by 이종철

제가 현재 쓰고 있는 "헤겔 <정신현상학> 해설"에 포함되는 원고의 일부입니다. 그냥 한 번 읽어 보시고 문제점을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발간 직후 부터 논란이 많았다. 당장 예나 대학의 동료인 셸링의 반발을 샀다. “어두운 밤에는 모든 것이 검게 보인다”는 서문의 유명한 구절은 셸링의 동일 철학에 대한 비판으로 읽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헤겔 사후 헤겔 철학은 보수적인 우파와 비판적인 우파로 갈라진다. 1840년 대에 이르러서는 헤겔 철학은 그야말로 상갓집 개 취급을 받았다. 이 때 마르크스는 오히려 자신이 헤겔의 적자 임을 분명히 했다. 마르크스는 무엇보다도 “헤겔 철학의 진정한 탄생지요 비밀”인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하고, <정신현상학>의 위대함은 인간의 자기산출을 하나의 과정으로 파악하고, 노동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데 있다고 했다. 하지만 헤겔은 노동의 긍정적 측면만을 보았을 뿐, 나중에 마르크스가 비판했던 ‘소외된 노동’의 부정적 측면을 보지는 못했다고 비판했다.


19세기는 자연과학과 실증주의의 발흥, 그리고 유물론 철학의 득세로 인해 헤겔 철학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축소되었다. 그나마 딜타이가 헤겔의 청년 철학을 해석학적 관점에서 조명한 정도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반전이 된다. 1931년 헤겔 사후 100주년 기념 대회를 전후로 헤겔과 <정신현상학>에 관한 많은 연구서들이 나온다. 대륙에서 20세기 철학을 주도했던 M. 하이데거는 <정신현상학>에 주목해서 헤겔의 ‘경험’을 자신의 존재론의 입장에서 해석했다. 그의 제자인 가다머 역시 헤겔 철학과 <정신현상학>을 해석학적 입장에서 해석하기도 했다. 그 밖에 하이데거의 제자인 칼 뢰비트도 헤겔 철학에 관한 저작을 남겼다.


하지만 헤겔 <정신현상학>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독일 보다는 프랑스에서 일었다. 전전에 러시아에서 망명한 철학자 알렉상드르 코제브의 헤겔 강의는 사르트르와 메를로 퐁티, 자크 라캉 등 당대 프랑스의 지성들을 그의 강의실로 끌어 들였다. 코제브는 이때의 강의록을 <헤겔 정신현상학 강의>(역사와 현실의 변증법, 설헌영)로 출판했다. 그는 이 책에서 마르크스의 노동과 하이데거의 죽음이라는 양면을 중시하면서 특히 헤겔의 인정 개념을 강조했다. 비슷한 시기 장 이폴리트는 <정신현상학>을 프랑스어로 정확하게 번역을 하고, 이 번역 경험에 기초해 <정신현상학>에 대한 방대한 주석서인 <헤겔 정신현상학의 생성과 구조>(헤겔의 정신현상학 1, 2 이종철/김상환, 이종철)을 출간했다. 그의 이러한 연구는 전후 프랑스에서 헤겔 붐을 조성하는 데 한 몫을 했다.


헤겔의 정신은 근대적 의미의 주체성의 완성으로 간주된다. 소쉬르의 언어 철학의 영향을 받은 구조주의자들은 이런 주체와 정신은 구조의 산물이라고 비판한다. 그들은 인간 주체가 역사와 사회를 구성한다는 사유는 환상으로 간주한다. 미셸 푸코 같은 철학자는 이러한 인간 주체는 근대의 특정 시간대에 모래 사장에 찍힌 발자욱과 같아서 파도가 밀려오는 순간 소멸할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푸코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의 주석서를 쓴 장 이폴리트의 애제자이기도 하다. 때문에 많은 프랑스 구조주의자나 해체주의자들은 대부분 헤겔과의 대결 속에서 자신들의 사상을 정립해 간 측면이 크다.


그동안 독일 관념론의 전통은 영미권의 분석 철학의 전통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이런 영미권에서 헤겔 철학, 특히 <정신현상학>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상당히 늘어났다. 과거 헤겔철학에 대해 혐오감에 가까운 비판으로 일삼던 분석철학이 오히려 자기 한계에 대한 하나의 돌파구를 모색하는 측면도 강하다. 이러한 경향은 ‘헤겔의 귀환’이나 ‘헤겔 르니상스’라는 표현으로 기술될 만큼 양적으로도 오히려 독일 철학을 압도하고 있다. <헤겔>이라는 방대한 저서를 쓴 찰스 테일러, <헤겔의 사다리>를 쓴 H.S. 해리스, 헤겔 관련해서 왕성하게 여러 책들을 출간하고 있는 F.C 바이저 등이 길을 열어 놓았다. 분석 철학의 선두 주자인 셀라스는 오히려 <경험주의와 마음의 철학>(1956)에서 오히려 헤겔과 같은 맥락에서 경험주의자들이 받들던 직접적 소여를 비판했다. 독일 철학에도 밝은 R. 로티는 헤겔 철학에서 형이상학적 경향을 배제한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헤겔 철학을 수용하기도 했다. 시카고 학파로 분류되는 핀카드와 피핀 역시 이러한 경향을 심화시켜면서 헤겔의 <정신현상학> 영독 대역판을 번역(핀카드)하기도 하고, 헤겔 철학을 현대 분석 철학과의 대화의 길을 모색(피핀)하기도 했다. 피핀과 같은 맥락에서 헤겔 철학을 분석 철학의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있는 맥도웰과 브랜덤 역시 미국에서의 헤겔 철학에 대한 연구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심오하고 풍부한 내용 덕분에 역사와 시대를 통해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있다. 텍스트의 해석은 독자의 몫이라는 말도 있듯, 이 <정신현상학>은 이제 서구의 사상사 문맥을 벗어나 그때가 언제가 될른지는 모르겠지만 동양의 사상사와도 적극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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