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우연히 Daum에서 K-Pop의 개척자인 박진영과 방시혁 그리고 사회자 유재석이 좌담하는 것을 보았다. 그둘이 무려 20년 동안 짝을 이루어서 저작권 등록된 곡이 무려 천 곡이 넘는다. 그중 60%는 박진영이 작곡했고, 나머지 40%는 방시혁이 작곡했다. 이들이 너무 많이 하다 보니 에피소드도 많다.
차를 타고 가면서 방송에 나온 곡을 들다가 "저거 완전 내 스타일 아냐? 누가 내 곡을 베꼈어?"라고 박진영이 하니까 그 옆에서 방시혁이 "그거 형이 작곡한 노래잖아."라고 맞장구를 친다. 방시혁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자기 스타일과 완전히 같아서 그 곡을 만든 사람을 스카웃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너무 많이 하다 보니까 나올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들은 정말 자기가 좋아서 간 길이 길이 된 것이나 다름 없어 보인다. 어떤 표준적인 모델이 있어서 그것을 따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실험적으로 개척하고 만든 것이 어느 날 후배들이 따라갈 수 있는 길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에게는 어떤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무수한 오답을 거치면서 정답을 만들어 간 것이다. 장자가 "정해진 길이란 없다. 길을 걸어가면서 만들어가는 것이다."고 말한 것을 그대로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무른 창조란 이런 일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반면 한국의 철학자들에게는 이런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사유가 거의 허용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이미 동서양의 고전, 외국의 유명 철학자들과 같이 이미 정답이 존재하고, 그들을 열심히 베끼고 암송하는 일이 그들이 할 일이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거나 스스로 하려는 노력이 없이 그저 이미 만들어진 길만 열심히 쫓아 가려고만 했다. 이런 데서 무슨 창의와 창조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이 둘은 길을 전혀 다르게 걷고 있는 것이다. K-POP이 워낙 잘 팔리니까 한국의 철학자들이 은근 슬쩍 K_Philosophy를 내 세우고 있다. 하지만 발상과 작업 자체가 전혀 다른 상태에서 그게 가능하겠는가? 전에는 바깥 것을 보면서 원숭이 흉내를 내던 한국의 철학자들이 이제는 안에 있는 것들을 흉내 내려고 하고 있다. 도대체 왜 철학자들의 머리는 이렇게 아둔할까? 지능 지수나 가방끈으로 보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닌데 왜 이럴까? 아무래도 오랫동안 DNA처럼 박힌 사대 근성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