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젊은 시절 서양 근대 철학, 특히 헤겔과 마르크스에 관심을 갖고 번역도 하고 논문도 여러 편 썼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어서인지 이제는 동아시아의 역사나 사상에 더 많은 관심이 간다. 여우가 죽을 때가 되면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을 향한다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동아시아의 사상은 우리의 정신적 자산이고 자양분인데, 그것을 너무 소홀히 했고 무지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것들은 우리가 직접 그것을 학습하지 않았더라도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힌 것들이기도 하다. 젊었을 때 왜 이런 우리의 정신적 자산을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입장의 내가 소박하나마 동양철학과 한국철학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한 이력을 몇 차례에 걸쳐서 써보고자 한다.
법과 대학을 다닌 내가 동양철학을 따로 배울 기회는 없었다. 대학원 철학과에 입학했을 때 타과 출신들은 동양철학을 학부에서 하나 정도 들으라고 해서 배종호 선생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한학에 조예가 깊고 한국 유학사의 틀을 잡은 배 교수의 수업을 재밌게 듣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 의미를 몰랐다. 그런 중에도 태극도설에 관한 황종희의 설명에 대해서는 깊은 인상을 받었다. 대학원 종합시험을 볼 때 동양철학 부분도 하나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답안지를 쓰고 나서 당시 담당 교수였던 유인희 선생한테 혼난 적이 있었다. 왜 기본적인 개념이나 사상의 틀도 못 잡았느냐고 당시 내 동기들과 함께 크게 질책을 받았다. 다들 타과 출신에다가 서양철학 전공이라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었다. 학부 수업 하나 듣고 동양철학을 바로 이해를 했으면 그게 오히려 비정상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로 정인재 선생이 번역한 풍후란의 <중국철학사>를 여러 차례 읽었다. 이 책을 통해서 중국철학사에 등장하는 대충의 개념과 흐름을 잡을 수 있었다. 나중에 노사광이 쓴 3권 짜리 방대한 중국 철학사를 읽기도 했지만 큰 감동은 받지 못했지만 불교에 관한 장문의 서술에서 배운 바가 컸다. 나는 '반야심경'과 '금강강'을 열심히 읽었는데, 반야심경은 지금까지 차를 탈 때 마다 암송을 하고 있다. 노장 철학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어서 틈틈히 보았고, <도덕경>은 당시 범우사에서 나온 포켓용 판을 들고 다니면서 핵심 구절들을 암송하기도 했다. 그 당시 김용옥 교수 사단에 들어간 친구 도 모군을 통해 불교의 향기에 접하기도 했다.
불교는 정서적으로 맞아서 여행 다닐 때도 일부러 유명하다는 사찰은 거의 다 들러 보았다. 내가 천안의 광덕사 근처에 몇 개월 머무른 적이 있다. 그 당시 유식학에 조예가 깊은 친구 박인성 박사-나중에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가 주도하는 세미나에 열심히 참석하면서 유식학 관련 문헌들을 이것 저것 탐닉한 적이 있다. 내가 대학을 떠나 사회생활을 10년 가까이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나같은 서생이 호기심과 빈약한 IT 기술 가지고 사회에서 버티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면서 실업자 생활을 2년 가까이 할 때 주역을 읽으려고 애를 많이 썼다. 주역에 관해 기본적인 줄기는 남회근 선생이 쓴 <주역강의>와 <역경잡설>을 통해서 잡았고, 특히 계사전은 거의 외우다 시피 하면서 탐독했다. 주역의 저자가 감옥에 갇혀 어려운 시기에 주역을 썼다는 이야기가 그 당시 나의 처지에 비추어 심정적으로도 와 닿았다.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를 18년 동안 당했을 때 그곳에서 주역 공부를 하면서 쓴 책이 <주역사전>이다. 일종의 주역을 연구할 수 있는 방법과 각 효사들을 쓴그 책이다. 주역의 계사전은 중국의 자연철학에 관한 개론서로 볼 수 있다. 하여간 독학이기는 했지만 내가 필이 꼿히면 미친 듯이 파고드는 경향이 있어서 당시 주역에 관한 논문들과 책들을 이것 저것 많이 읽었다. 나중에 대학에 돌아왔을 때 후배인 동양 철학자 임채우 교수가 주역에 관해 좋은 글들을 많이 쓴 것을 알았다. 그는 <주역 왕필주>를 번역했을 때 나에게도 한 권을 보내준 적이 있다. 그런데 학위 논문을 작성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읽지는 못한 상태로 오랫동안 서가에 꼿혀 있었다.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