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가 1970년대에서 2010년대 격동의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쓴 자전적 지식 소설입니다. 벗님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005. 내가 문을 두드린 교회는 동네 교회지만 근방의 다른 교회들보다는 비교적 컸다. 이 교회는 **시장 앞 국회 단지 언덕 위에 위치 해있다. 이 교회로 올라가는 길은 2가지다. 하나는 내가 사는 집 뒤쪽으로 골목을 통해서 올라가는 길이 있고, 다른 하나는 **시장 앞 정류장에서 국회 단지 쪽으로 올라가는 큰길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다 보면 왼쪽으로 교회로 가는 길이 나오고, 그쪽으로 한 100여 메타 올라가면 교회가 나온다. 교회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본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눈에 띈다. 왼쪽에는 청년회와 청소년회가 이용하는 회의실 건물이 있다. 교회 마당은 썩 넓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좁은 것도 아니다.
이 교회의 장점은 무엇보다 청년회의 활동이 활발하다는 점에 있다. 내가 이 교회를 내 발로 찾아갔을 때도 여러 청년이 나를 반겨주면서 주일 예배 외에 청년회 모임에도 꼭 참석하라고 인도해 주었다. 이 모임에서 따로 성경 공부를 주로 하고 기타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개발해서 나누기도 했다. 성경에 대해서는 나 역시 관심이 있어서 나는 등록 즉시 청년회 모임에 참석했다. 내가 참석한 두 번째 모임인가였다. 성경 공부를 무사히 마친 다음에 공부를 주도하던 이가 기도를 끝으로 마감했다. 이번에는 친교 시간이다. 친교부장을 맺고 있는 20대 초반의 앳된 여성이 말을 잇는다.
“자, 지금부터 친교의 시간입니다. 각자 자기가 마음에 드는 분 앞으로 자리를 옮겨 보세요. 오늘은 새로 들어 온 분도 있으니까 반갑게 맞아주세요.” 그녀는 미리 준비한 초를 각자에게 나눠 준다. 각자 그 촛불을 켠다.
나는 아직 사람들을 모르는 상태라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랬더니 아까 그 여성이 내 앞으로 온다.
“각자 눈을 감고 자기 앞에 있는 분을 위해 기도해보세요.”
이것도 나에게는 생소하다. 나는 그냥 눈만 감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자기 이름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예요. 이 교회는 어렸을 적부터 다녀서 잘 알고 있어요. 지금은 청년회 친교부장을 맡고 있어요. 새로 오셔서 반갑습니다”.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까딱하면서 인사했다. 생각보다 인상이 서글서글해 보인다. 내가 원래 낯선 사람에게는 얼굴을 가리는 편이지만, 호감 가는 상대 여성이 친절을 베푸니까 내 마음도 열리는 느낌이다.
“저는 ***입니다. 새로 뜻한 바가 있어서 교회 문을 두드리게 됐습니다. 교회나 기독교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습니다.”
“괜찮아요.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서 교회 문을 두드린 것은 대단한 것 같아요. 보통 사람들은 아무리 선교를 해도 외면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씨는 주님이 특별히 은혜를 베푼 것 같아요.”
내 앞으로 **이 선뜻 다가 온 것이다. **가 나에게 온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 보다는 내가 신입 회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순간 숨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강렬한 인상으로 인해 80년 대 거진 7 년 가까이 그녀와 애증이 교차되는 지독한 경험을 하게 된다. 교회 생활은 80년에 들어 대학가의 데모가 격렬해질 때까지 나의 일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는 여기서 성경 공부도 하고 80년에는 '한국 교회 수용의 100년사'를 청년회보에 연재하기도 한다. 내가 이 교회를 오래 다니지는 못했지만, 기독교는 여러가지 형태로 나의 삶에서 떠나지 못했다. 아마도 내 속에는 종교적 체험에 대한 근원적 열망이 있어서 그런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