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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와 상대

by 이종철

오늘 아침 식탁에서 아내와 나눈 이야기다. 며칠 전 아내가 청국장을 끓여 놓았는데 거진 5일 째 계속 먹다 보니 지겹다.


"이런 찌개 끓일 때 2-3일 분만 끓여. 청국장이 맛은 있지만 계속 먹으려니까 지겨워."


"그럼 버리지 그래."


"나는 음식은 '절대' 버리지 않아. 버리면 쓰레기가 되고, 그게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아." 그러니까 아내가 웃으면서 이야기를 한다.


"'절대'가 어딨어?"


"아니, '절대'가 없으면, 모든 게 '상대'의 세계에 빠지는 데 그러면 너무 허무하지 않을까? '절대로' 변치 않는 사랑, 우정, 믿음 등이 다 사라지면 안 되잖아. 사랑을 시작하는 남녀가 절대 오래 지속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사랑을 할 수가 있을까? 인간 사회는 이런 '절대적 가치들'에 의해서 지속되고 유지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도대체 '절대'가 없다는 당신의 말은 뭐야? 그런 '절대적' 망발을 어떻게 입에 올릴 수 있어?"


절대와 상대의 논쟁은 철학이나 인문학의 역사에서 무수히 반복되는 쟁점이다. 여기서졸지에 내가 '절대'를 고집하는 순수 근본주의자가 돼 버렸다.


"'절대'가 없다고 해서 반드시 가치의 혼란이나 허무에 빠지는 것은 아니지. '절대'가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오히려 그것을 더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까? 서로 사랑하는 남여가 이 사랑도 깨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깨지지 않도록 더 노력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절대'가 없다고 모든 것이 상대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봐. 그리고 '상대적 절대'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갑자기 내용이 점점 철학의 세계로 넘어간다. 아니 이 여인네가 철학자와 오래 생활하더니 이제는 철학을 자연스럽게 몸으로 보여주는 것 같네.


"'당신이 말한 '상대적 절대'가 무슨 말이야?"


"인간 세계에서 사용하는 가치와 관련된 개념들, 아까 말한 사랑, 우정, 믿음과 같은 개념들은 수학에서 말하는 '절대적 필연성'을 띤 것은 아닐 지라도 어느 정도 상대적으로 절대적 가치의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지키려 하잖아. 이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절대적이 아니라 해도 사회가 지켜지는 것이 아닐까? 너무 수학에서 말하는 '절대'와 비교하다 보니 상대적 절대를 무시하는 것이 아닐까?"


"아하. 기발한 생각이네. 오늘은 이 철학자가 철학자의 아내로부터 철학 강의를 들었네. 확실히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읇는다'는 말이 빈말은 아닌 것 같아. 잘 배웠습니다. 싸모님! 그래도 '절대'가 없다고 음식을 막 버리시면 안 되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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