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서울의 기온이 영하 13도까지 내려갔다. 이제 본젹적으로 추위가 맹위를 떨치려 한다. 그런데도 추위에 대한 체감은 아직 외출 전이라 그런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파트들이 난방이 잘 돼 있는 탓이다. 하지만 이런 추위를 대할 때마다 옛날 생각을 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어린 초등학교 시절, 우리 세대라면 다들 경험을 해봤겠지만 그 당시는 어디 난방이나 보온이 되었겠는가? 제대로 따뜻한 물을 사용하기 어려운 시절이라 겨울만 되면 새카만 손등에 때가 덕지덕지껴서 갈라진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목욕은 명절 날이나 돼야 대중 목욕탕으로 무슨 행사를 하듯 구경할 수 있다. 지금의 싸우나나 찜질방은 쉬러 가는 분위기지만 그 당시 명절날 전에 가는 목욕탕은 정말이지 '행사'다. 오랫동안 불려놓은 때를 구석구석 씻어내는 신성한 의식과도 같다.
사실 이렇게 추운 날 학교가는 일은 보통 고역이 아니다. 그 당시 나는 보조기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걷는 데는 큰 불편을 느끼지는 않은 것같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거의 2킬로 가까이 되는데 추운 날 등교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의복도 변변치 않아 요즘아이들처럼 따스하게 몸을 가릴 형편도 되지 않는다. 그래도 학교를 땡땡이(?) 치는 것은 생각도 못해봤다. 추위를 무릎쓰고 어렵사리 교실로 들어가려는 데 지각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선생님들이 별로 개념(?)이 없었던 것같다. 그 추위에 땡땡 얼어붙은 빨간 귓볼을 손가락으로 튕길 때 얼마나 아팠을까? 그렇지 않으면 얼어터져 간간히 선혈도 보이는 손등을 내밀라고 해서 잣대로 때리는 것이다. 신발을 벗겨 발바닥도 때렸다. 그 당시는 그저 몹시 아팠다는 생각뿐이 없었다. 나중에 커서 돌이켜보면 한편으로 선생님들이 약간은 새디스트 같다는 생각도 들고, 다른 면에서는 요즘 학교의 교실에서 엄청 따지는 인권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것같다.
그렇게 맞아가면서 교실에 들어가지만 추운 겨울 날 점심 시간은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에는 조개탄 난로에다가 노란 벤또(도시락)들을 올려놓고 데워 먹는다. 오래 전이라 지금은 기억이 가물하지만 불이 너무 쎄서 그 벤또 안의 밥이 타면서 교실안으로 퍼지던 고소한 냄새는 지금도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니까 벤또의 위치를 잘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아래도 안 되고, 너무 높이 있어도 안 된다. 그 벤또 안에 재수 좋은 날은 계란 부침을 넣어오는 경우도 있다. 지금은 그런 계란이 너무 흔해 빠져 있지만 그 당시처럼 먹거리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계란부침은 최고의 영양식이다. 점심 시간에 여러 아이들이 몰려 앉아 왁자지껄 떠들면서 벤또를 나눠 먹던 기억, 이제는 아련해진 추억으로 남은 것같다.
결혼 후 내가 몇 년을 통일로 주변의 오금리라고 하는 곳의 마당 넓은 단독 주택에서 산 적이 있다. 여름에는 주변 경관도 좋고 나무들도 많아 시원해서 살기 좋았다. 하지만 겨울만 되면 그 집 난방이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오래된 고옥이라 우풍도 쎄다. 지금은 그런 풍속이 없어졌지만 30여년전만 하더라도 결혼할 때 두툼한 이불은 필수품목이다. 전기 장판에다가 그런 두툼한 이불을 깔고 기름 보일러를 쎄게 틀어놔도 속수 무책이다. 너무 춥다 보니까 어떤 경우는 서생원들이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경우도 있다. 자고 일어나면 웃목에 놔뒀던 자리끼가 얼어 붙을 정도다. 30년도 훨씬 더 된 세월인데 기름값이 싸던 그 당시 겨울 난방비로 한 달에 30만원이 넘게 들었다. 지금 돈으로는 100만원 가까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겨울 추위를 버티는 것이 많이 힘들었다. 한 번은 지금의 딸 아이가 5살도 안됐을 때 우리 가족이 놀러 갔다가 밤 늦게 귀가하던 중이었다. 그 때 어린 딸아이가 하는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빠, 우리 모텔가면 안될까?" 집이 얼마나 추웠으면 그 어린 아이가 몇 번 가본 모텔에서 따뜻한 물도 나오고 난방도 잘 돼 있는 것이 부러워 보였을까?
몇년 전쯤에 원주 분교의 환경공학과에 있는 구모 교수가 강원도 홍천에 전원주택을 지어서 집들이겸 다녀온 적이 있다. 홍천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그야말로 하얀 집을 공들여 잘 지어 놓았다. 그런데 가기 이틀 전 강원도에 눈이 엄청 내렸을 때 당장 드나드는 것이 걱정돼 연락해본 적이 있다. 요즘 지은 집이야 산 속에 있어도 난방과 보온이 잘 돼서 옛날 집처럼 걱정할 일은 아니다. 다만 산이라 눈이 쌓이면 차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데 보통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내 차는 LPG차라 겨울만 되면 애를 먹인다. 오늘 같은 날 정도로 기온이 떨어지면 아침에 출근을 할 때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그 다음 날에도 기온이 뚝 떨어진 홍천 산속에서 갑자기 시동이 안 걸려 한 시간 정도 애를 먹이다 긴급출동 서비스로 해결했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추운 날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노천에서 추위와 온 몸으로 부딪히는 차가 더 걱정이다. 이번 겨울에도 계절학기 수업이 1교시부터 있는데 강의가 걱정이 아니라 차의 시동이 더 걱정이다.
기온이 급강하 한 탓이 옛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