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정보에 맞서 비판적 수용이 필요한 세상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현생이 바쁘기도 했고, 무언가 멍하니 생각을 하지 않는 삶에 익숙해지기도 했다.
밀리의 서재를 다시 구독하게 되면서 여러 가지 책을 살짝 들춰보면서 다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2025년 5월.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면서 내가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주어진 정보를 입력하여 그것을 출력해 내는 것인지 혼동이 오기 시작했다.
나는 이동하거나 쉬는 시간이 있을 때 무언가 보는 것을 좋아한다. 책, 인터넷 뉴스, 게시판의 글, 유튜브, 넷플릭스의 드라마와 예능 등등 다양한 정보를 쉴 새 없이 받아들인다.(도파민 중독이 돼버린 걸까)
과연 정보가 내게 입력되는 순간에 나의 뇌는 정보를 객관적이며 주체적인 판단을 통해 가공해 나가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 묻는다.
다른 사람들이 의도를 가지고 제공하는 정보가 '완벽한 사실'일리가 없으니, 내게 적확한 정보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그 수많은 정보를 사실인지 검증해 내는 시간들, 나의 삶을 살아가는 가치관과 대조하며 '올바른 생각'인지 확인하는 절차를 모든 정보에 적용할 수 없다.
결국 사실이겠거니 하며 개략적인 정보를 받아들이게 된다. 특히 전달자가 공인된 언론, 유명한 유튜버, 넷플릭스에 올라온, 이러한 상업적 검증이 끝난 정보들을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그렇게 얻은 정보를 타인에게 내가 전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정확한 정보라고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난 후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정보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정확하게 정정하거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틀린 것을 전달했다는 부끄러움과 함께, 내가 틀렸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과정이 싫어서일까)
이런 경험을 통해 '내가 사실이라 믿은 것들의 오류'의 반복을 피하고자, 타인에게 전달하기 전에 한 번은 검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재는 그 검증 과정에 AI도 한발 얹었다. 그러나 AI는 실수가 많기 때문에 다 믿기도 어렵다.)
사고의 확장. 주어진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비판적이며 효율적으로 정보를 습득하는 방법을 찾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내 주변의 정보, 특히 내가 속한 조직의 정보를 얻게 된다.
사람들이 말하기 좋아하는 소문에 나도 사람인지라 흥미가 생긴다. 자극적인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 그 사람 정말 XX 한 사람이다' 하는 판단을 내린다.
자극적인 이야기에 빠져 코난처럼 조사를 시작하고, 소문에 말을 덧붙여 전하기도 하면 작은 눈덩이가 눈사람이 된다.
이때 나의 가치판단, 정보의 진실은 뒤에 있고 자극적인 결과물에 대한 탐식만 일어난다.
이 현상을 회사라는 조직에서도 보았지만,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다.
어느 시점부터 언론은 '사실'을 다루지만 사실에 대한 논평이나 의견을 제시하지 않게 되었다.
누가 그러던데요. 누가 그랬대요. 오늘은 이런 일이 발생했습니다.라고 말만 전달하고 분석을 제공하지 않는다.
(가끔 보면 그 '누구'가 누군지도 모른다. '누구'가 과연 존재할까 하는 의문도 든다.)
한쪽의 자극적인 생각을 그대로 옮겨 적고, 반대의견은 조사하지 않는다.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글은 재미있고, 반박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흥미가 식기 때문이다.
단순히 '재미있으면 된다'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흥미롭고 재미있으면 독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만약 구설수에 오른 대상이 내가 되었을 때에도 단순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이 될까라는 질문을 해본다.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라는 말로 포장해서 이야기를 꺼내오며 '여기 보세요 재미있는 일이 있어요!' 하고 기사를 써내려 간다.
하지만 이것은 선택적으로 적용된다. 권력이나 부를 갖춘 사람에 대해서는 굉장히 보수적이며 객관적이며 조롱이 들어간 글을 보기 힘들다. 하지만 자기보다 약자이거나 깎아내리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추정과 조롱이 들어간 기사를 내놓는다. 그리고 그것이 대중들의 클릭수를 유도할 수 있으면 더 좋다.
좋은 기사란
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났고
나.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이며
다. 무슨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
객관적인 분석이 들어간 완성도 높은 글이다.
그러나 지금 기사들을 보면 언론이 싫어하는 대상에겐 편향적이다.
(A가 잘한 거라고 한 거 사실 잘못한 거예요. A는 뇌물 받은 나쁜 놈이래요. A가 한 일에 기소당했어요. 잘못한 게 분명해요.)
언론의 화려한 수사들을 다 떼어놓고 보면 이 정도 수준의 글만 퍼 나르고 있다.
자기들이 지지하고 지켜야 하는 권력에는 충성을 한다.
권력을 가진 자의 이상한 발언을 기사로 옮길지 말지 선택하는 일은 기자와 편집국의 몫이다. 헛소리에 비평 없이 말을 옮기는 것은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그런 한쪽에 치우쳐진 글을 써내려 가는 것에는 그만한 책임이 필요하다.
글에는 힘이 있다. 한쪽의 말만 옮기는 것도 편향된 것이다.
다양한 정보를 적확하게 제공하는 것. 그리고 그 정보를 검증하는 것이 정보 제공자의 역할이다.
상식적이고 사회의 발전을 꾀하는 기자라면, 자기가 글을 써 내려가기 전에 그 글의 파급력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의 언론시스템에서는 파급력을 고민할 만큼 글을 쓰는데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못한다.)
우리나라가 언론에 의해 오염돼 가는 과정들을 보아왔다. 사실보다는 자극적인 가설에 심취하는 사람들도 문제지만, 사실을 섞어서 국민들에게 자기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생각하게끔 교묘하게 속이는 언론이 더 문제다.
시간이 지나면 신문사가 사라지고, 대형 언론보다는 개인기자들의 정보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그러나 자본력을 가진 정보 채널은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빠르게 적응했다.
아직 우리나라는 재벌, 족벌 언론이 한국을 지배하고 있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존재한다.
언론은 객관적 사실과 함께 비평을 해야 한다. 그러니 누가 ㅇㅇ이라 말했다는 사실 중에서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옮겨 적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에게는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가고 있고, 쓸데없는 헛소리는 없어져도 충분한다.
어느 특정 정치적 성향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지하는 무엇(가치관, 정당 등)에 대해서 언론이 말하는 대로 듣고 그대로 수용하지 말아야 한다. 소통채널의 다양화로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 그럴수록 정보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면서 스스로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 필요한 세상이다.
책을 읽자. 책을 통해서 위대한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읽고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
쉽게 주어지는 정보를 통해서 정신적 발전을 이루기는 어렵다.
_에리히 프롬의 도서들을 추천한다. 현대인들의 정신분석,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성찰을 하게끔 도와준다.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 에리히 프롬 -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