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1. 감정 변동 폭- 위즈덤 아고라 글쓰기 대회 제출 작품

by 이야기조각수집가

나는 아직 선택지 위에 서 있는 나이였다.

오늘 이 무대는, 내 미래가 정해지는 첫 무대이자

나에게 모든 것을 주거나 빼앗아 갈 수 있는 무대였다.

나는 무대 뒤에서, 다른 발레리나들이 춤추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 사람씩 무대를 내려올 때마다 내 차례는 점점 가까워졌고, 등과 이마는 어느새 식은땀으로 흥건해졌다.

무대 위의 춤은 흠잡을 데 없었다. 발끝은 정확했고, 호흡은 일정했으며, 동작 사이의 시간마저 계산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춤에선 아름다움 외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마치 정답을 완벽하게 외운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기분과 닮아 있었다. 틀리진 않았지만, 마음을 부르지 않는.

처음 AI가 발레 심사를 시작했을 때, 나도 저렇게 춤추는 법을 배웠다.

정확히 말하면, 저렇게 춤추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왔다고 배웠다.

처음 AI가 심사를 시작했을 때도, 모두가 이렇게 말했다.

“이제 정말 공평해졌어.”

“감정에 휘둘리지 않잖아.”

나도 그렇게 믿었다.

---------

처음 우리에게 심사가 진행되던 날, 무대 앞엔 심사위원석 대신 거대 스크린이 놓였고 우린 그 아래에서 춤을 췄다.

춤이 끝났을 때 박수는 없었다.

대신 숫자가 나타났다.

정확도

균형 안정성

리듬 오차

그리고 마지막으로, 처음 보는 항목.

감정 원인 변동 폭.

그 수치를 본 순간, 코치의 표정이 굳었다.

“감정이 많아.”

그는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동작이 벗어나.”

그날 나는 처음 알았다.

감정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방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AI는 틀리지 않았다.

감정이 올라갈수록, 내 발은 늦어졌고

숨이 흔들릴수록, 균형도 무너졌다.

그래서 감정은 제거되었다.

잔인해서가 아니라 효율적이어서.

---------

몇 달 뒤, 나는 감정을 지운 춤을 성공시켰다.

내 몸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었다.

동작은 자동으로 이어졌고, 생각은 필요 없었다.

AI가 요구한 그대로, 나는 움직였다.

결과는 완벽했다.

사람들은 나를 천재라고 불렀고, 코치는 처음으로 만족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무대를 내려온 순간, 내 다리가 떨렸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그냥 텅 비어있었다.

거울 속의 나는 분명 나였지만

그 춤을 춘 사람이 정말 나인지 몰랐다.

---------

마리가 탈락하던 날, 나는 확신했다.

마리는 항상 조금 느렸고, 정확도도 평균 이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춤을 보면 숨을 멈추게 됐다.

그날, 마리는 울고 있었다.

춤을 추며 울었다.

AI의 평가는 냉정했다.

정확도 88

감정 변동 폭 67

탈락.

마리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무도 그녀를 안아주지 않았다.

감정은 규정에 없었고, 위로는 기준 밖이었다.

그날 이후, 마리는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는 배웠다.

느끼지 않는 법을

---------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나는 내가 왜 처음 춤을 추기 시작했는지 떠올린다.

발레 슈즈가 너무 커서 발이 안에서 헛돌던 날.

음악이 틀리면 멋대로 박자를 바꾸던 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움직이고 싶어서 춤을 추던 날.

그때의 나는 점수를 몰랐고,

그래프를 몰랐고,

감정 변동 폭이 뭔지도 몰랐다.

그냥 살아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

그래서 나는 몰래 연습했다.

AI 카메라가 꺼지는 시간,

기록되지 않는 연습실 구석에서.

음악 없이 춤을 췄다.

틀려도 멈추지 않았고,

흔들려도 다시 하지 않았다.

숨이 가빠지는 걸 허락했고,

기억이 올라오는 걸 막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다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춤을 들고 이 무대 뒤에 서 있다.

이 춤은 틀릴 것이다.

감정 때문에 동작이 늦어질 것이고,

기억 때문에 균형이 무너질 것이다.

AI는 이 춤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알기 전에, 느낀다.

이 춤이 어떤 마음에서 시작되었는지.

만약 오늘 이 무대가 나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간다면,

적어도 하나만은 지키고 싶다.

점수도 아니고,

기록도 아니고,

다음 무대도 아닌—

내가 왜 춤을 추기 시작했는지.

커튼이 열린다.

나는 숨을 들이쉬고, 무대로 나간다.

이 무대는 나만의 미래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선택할 것인지 묻고 있었다.

완벽한 기술의 시대에, 인간에게 남겨진 가치는 무엇인지.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