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04. 미래 직장

by 이야기조각수집가

나는 회사에서 “결정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사업을 시작할지,

어떤 프로젝트를 접을지,

어디에 돈을 쓰는 게 맞는지.


데이터를 보고 판단하고,

회의를 열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었다.


그게 내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일은 더 이상 사람이 하지 않는다.



AI가 처음 도입됐을 때, 나는 환영했다.


“이제 실수 줄겠네요.”

“감으로 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나는 직접 그 시스템을 도입한 팀에 있었다.

업무 자동화율을 30%에서 60%로 올렸고,

회사는 나를 칭찬했다.


“미래를 준비한 인재입니다.”


나는 뿌듯했다.

내가 회사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고 믿었다.



2년 뒤,


내 자리 앞에 작은 화면이 세워졌다.


한도윤

직무 자동화율 96.8%

상태: 대기 인력


나는 그 숫자를 한참 바라봤다.


96.8%.


그 말은,

내 일이 거의 다 AI로 대체됐다는 뜻이었다.


이제 사업을 시작할지 말지,

어디에 투자할지,

어떤 사람을 뽑을지,


전부 AI가 결정한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틀리지도 않는다.



나는 해고되지 않았다.


월급은 그대로 나왔다.

복지도 유지됐다.


“필요할 때 호출됩니다.”


회사 측 설명은 간단했다.


하지만 나는 하루 종일 할 일이 없었다.


출근해서 앉아 있다가,

알림이 오지 않으면

그냥 퇴근했다.


처음엔 좋았다.

편했다.


야근도 없고, 스트레스도 없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어느 날, 면담이 잡혔다.


회의실 스크린에 AI가 떴다.


“한도윤 님의 과거 의사결정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그래프가 여러 개 떠올랐다.


“귀하는 평균적으로 4%의 감정 변수를 포함해 판단을 내렸습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게 인간 아닌가요?”


잠시 멈춤 표시가 떴다.


해당 변수는 효율 저하 요인입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내가 인간이었던 게 문제였다는 걸.



집에 돌아와 아들이 물었다.


“아빠 오늘 뭐 했어?”


나는 잠깐 멈췄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일했지.”


거짓말은 아니었다.

출근은 했으니까.


하지만

결정은 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미래를 정하지도,

위험을 감수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대기 중이었다.



회사 건물은 여전히 크고,

AI는 완벽하게 일한다.


실수는 거의 없다.

손해도 줄었다.


모든 게 안정적이다.


그런데 가끔 생각한다.


완벽한 회사에서

나는 왜 점점 작아질까.


AI는 나보다 똑똑하다.

나보다 빠르다.

나보다 정확하다.


그건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틀릴 수 있었다.


망설일 수 있었다.


가끔은 손해를 보더라도

사람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게

내 일이었는데.



내 자리 화면에는 아직도 이렇게 떠 있다.


상태: 대기


나는 매일 출근한다.

혹시라도 “필요함”으로 바뀔까 봐.


하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다.


나는 회사에서 사라진 게 아니라,

결정에서 사라졌다는 걸.


그리고 결정이 사라진 자리에는

나라는 사람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걸.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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