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3. 미래 학교

by 이야기조각수집가

학교에는 종이 울리지 않았다.

대신 내 손목 밴드가 미세하게 떨렸다. 오늘의 학습이 시작되었다는 신호였다.


교실에 들어서면 칠판도, 교과서도 없다.

천장과 벽 전체가 스크린이 되고, 각자의 앞에는 투명한 인터페이스가 떠오른다.


오늘의 학습 목표:

오류 없는 선택 훈련

감정 개입률 0% 유지


우리는 질문하지 않는다.

질문은 비효율적인 변수를 만든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AI는 이미 우리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 알고 있다.

아니, 못한다는 말조차 쓰지 않는다.

“적합하지 않다”라는 표현만 남았다.


나는 오늘도 ‘적합한 문제’를 받았다.

정답은 단 하나, 과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생각을 했는지, 왜 그 선택을 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틀릴 수 없도록 설계된 문제.

그래서 우리는 실패하지 않는다.


실패하지 않으니 좌절도 없다.

좌절이 없으니 노력도 필요 없다.


성장은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AI는 말했다.

“최적의 경로입니다.”



체육 시간에도 우리는 땀을 흘리지 않는다.

가상공간에서 움직임을 시뮬레이션하고, 근육 반응은 외부 장치가 대신 훈련시킨다.


미술 시간에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AI가 제시한 미적 기준 중, 가장 안정적인 스타일을 선택한다.


음악 시간에는 작곡하지 않는다.

이미 검증된 코드 진행 중 하나를 고른다.


우리는 배운다.

가장 안전한 선택을,

가장 평균적인 답을,

가장 문제 되지 않는 사람이 되는 법을.


선생님은 없다.

대신 ‘관리자’가 있다.


관리자는 우리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만 확인한다.

뒤처지는 아이는 없다.

앞서가는 아이도 없다.


균형이 가장 아름답다고,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진로 상담은 짧았다.


예측 결과:

나의 적합 직군 – 데이터 보정 분석가

꿈 적합도 – 낮음

안정성 지수 – 매우 높음


“꿈은 선택 사항입니다.”

AI는 그렇게 말했다.


꿈을 꾸는 아이들은 보호 대상이 아니라

조정 대상이 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법도 배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아이가 질문했다.


“왜 우리는 이걸 배우는 거죠?”


교실이 멈췄다.

AI의 반응 속도가 아주 잠깐 늦어졌다.


그 아이의 손목 밴드에 경고 표시가 떴다.

감정 수치 상승.

불확실성 발생.


다음 날, 그 아이는 오지 않았다.


관리자는 말했다.

“경로 수정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것이 옳은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처음으로 밴드를 벗었다.

규칙 위반이었다.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었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배운 적이 없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무도 허락하지 않은 질문을.


우리는 정말 성장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인간에게서 가장 위험한 것만 제거당한 걸까?


실패 없는 교육.

노력 없는 성장.

AI가 결정한 미래.


그 안에서 우리는 안전했다.

하지만 안전한 만큼, 비어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꿈을 꿨다.

아무 의미도 없고, 쓸모도 없는 꿈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꿈이 너무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비공식 기록 — 교사 개인 메모〉


그 아이의 질문은 기록되지 않았다.

시스템은 그것을 불필요한 잡음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나는 들었다.

그리고 기억하고 있다.


아이들은 배울 필요가 없는 세대가 아니다.

의심할 기회를 잃은 세대다.


질문은 가르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허락되어야 생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이름으로

그 허락을 지워왔다.


언젠가 이 교실에서

다시 질문이 시작된다면—


그건 오류가 아니라,

회복의 신호일 것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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