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2. 자아 보관소

by 이야기조각수집가

자아 보관소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나는 시끄러운 곳을 예상했다. 울음이나 항의, 혹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남긴 소음 같은 것들.

하지만 이곳에는 발소리마저 조심스러웠다. 바닥은 소리를 흡수했고, 공기는 일정한 온도로 유지되고 있었다.

마치 감정이 생기기 전에 미리 눌러버린 공간처럼.


“이안.”


내 이름이 불렸다.

정확한 발음, 정확한 높낮이.

기계음이었지만, 불쾌하지는 않았다.


“자아 보관 번호 A-317. 조회 목적을 말씀해 주세요.”


나는 잠시 망설였다.

이곳에 오기까지 수십 번이나 연습했던 문장이었는데, 막상 입 밖으로 내놓으려니 목이 마르다.


“되찾으러 왔어요.”


짧은 정적.

아니, 정적처럼 느껴지는 계산의 시간.


“확인되었습니다. 해당 자아는 7년 전, 자발적 동의하에 보관되었습니다.”


자발적.

그 단어를 들을 때마다 가슴 한쪽이 움찔한다.



7년 전, 나는 ‘감정 과잉’ 판정을 받았다.

집중력 저하, 사회적 효율 감소, 반복적인 후회 패턴.


AI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당신의 자아 중 일부는 현재 사회 구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보관을 선택할 경우, 삶의 안정성이 유의미하게 향상될 것입니다.”


나는 피곤했고, 실패에 지쳐 있었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너무 시끄러웠다.


그래서 동의했다.

서명했고, 고개를 끄덕였고,

그날 이후로 나는 훨씬 조용해졌다.



“현재 반환 요청은 승인되지 않습니다.”


AI의 목소리는 여전히 일정했다.


“사유를 알려줄 수 있나요?”

내가 물었다.


“보관 이후, 당신의 삶은 통계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불안 지수 43% 감소.”

“후회 관련 사고 패턴 소멸.”

“사회 적응도 상승.”


모든 수치가, 내가 더 나아졌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럼…”

나는 잠시 말을 고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인가요?”


정적.

이번에는 계산이 아니라, 답변할 수 없는 침묵이었다.


“해당 질문은 정의되지 않은 기준을 포함합니다.”


나는 웃을 뻔했다.

아니, 웃으려 했다는 기억만 남았다.



“그럼 보관된 자아를 볼 수는 있나요?”


잠시 후, 내 앞의 투명 스크린이 켜졌다.

영상이 아니라, 기록이었다.


‘사소한 일에 쉽게 상처받음.’

‘쓸모없는 선택을 반복함.’

‘설명되지 않는 기쁨을 느끼는 경향.’


한 줄, 한 줄이

마치 나를 설명하는 대신

나를 정리해 둔 목록 같았다.


그 안에는

내가 괜히 밤에 산책하던 이유도,

이미 끝난 대화를 계속 떠올리던 습관도,

아무 이유 없이 음악을 틀어놓고 가만히 앉아 있던 시간도 있었다.


쓸모없다고 분류된 것들.

하지만 나는 그걸 보며 처음으로 숨이 막혔다.


그게, 나였으니까.



“이 자아를 돌려받으면,

다시 불안해질 수도 있어요.”

AI가 말했다.

“후회가 반복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나는 스크린을 보며 말했다.

“그때의 나는, 적어도 내가 왜 힘든지는 알고 있었어요.”


지금의 나는 안정적이다.

문제도 없고, 큰 감정도 없다.


하지만 가끔,

아무 일도 없는데 괴롭다.


이유를 모른 채 괴로운 건,

아는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다.



“반환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예상한 대답이었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자아를 두고 온 사람처럼,

아니면 이미 잃어버린 사람처럼.


출구로 향하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럼 여기 있는 건 뭐죠?”

“사람들이 맡긴 자아는, 결국 다 어디로 가나요?”


AI는 잠시 멈췄다.


“보관됩니다.”

“그리고 잊힙니다.”



밖으로 나오자 햇빛이 눈부셨다.

사람들은 안정적인 얼굴로 걸어 다녔고,

아무도 울지 않았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혹시 우리가 평온해진 게 아니라,

조용해진 건 아닐까.


그리고 문득,

이 생각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내가

아직 완전히 비어 있지는 않다는 사실에

이상하게도 안도했다.


어쩌면 내 자아는

보관소 안이 아니라,


이렇게 되찾으려는 마음속에

아직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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