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하니까 기분이 어때?”
전역하는 병사들에게 항상 물어봤던 질문이다. 행복하다는 대답이 대부분이었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가장 인상적인 대답이 있다.
“아쉽습니다.”
2021년 소위 때 같이 일했던 행정병이었는데 이름 중 한 자를 따서 ‘영’이라 칭하겠다. 전역 전날에도 영이는 야근을 했었다. 무슨 일을 했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아마도 행정병 엑셀 자료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군 생활이 어땠냐는 나의 질문에, 너무 좋았다고 하면서 더 잘했으면 좋았겠다는 답을 했었다. (장교 생활을 통틀어서 보면, 그런 대답을 한 병사는 영이가 유일했던 것 같다.) 평소 행실이 올바르고 일을 정말 잘했던 친구라서, 더 잘했으면 좋았겠다는 그 말이 당시엔 의외라고 느껴졌었다.
그로부터 3년 반이 흘러 2025년 5월 30일이 되었다. 전역을 하루 앞둔 날이었는데 군 생활이 너무 보람차고 행복했다는 감정이 들었다. 전역식을 위해 부대로 돌아가기 전, 장교 생활이 만족스러웠다고 엄마에게 말하기까지 했다. 예비역 대위가 된다는 것도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군대에 대한 인상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군대는 정말 특별한 곳이었다.
20대의 나이에 리더가 되어 본 경험, 내향성을 극복하고 브리핑과 교육을 했던 경험, 수백 명의 병력을 관리했던 경험 등 위관장교로서 갖춰야 할 역량들을 계발할 수 있었다. 조직을 지탱하고 타인을 이끄는 역할은 쉽지 않았지만 너무나 값진 경험이었다. 뿐만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병, 부사관, 군무원, 장교 구분 없이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들이 곁에 있었던 덕분에 장교로서 역할을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의 기회를 찾을 수 있었다. 예일대 출신 동기, 특수부대 CCT 친구, 미군들과 교류했던 경험은 글로벌 세계로 나아갈 용기를 심어주었다. 계획된 우연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생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소위 때는 일본에 가서 일할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여러모로 내게 장교 생활은 축복이었고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 주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했던 것들이 떠오르며 아쉬움이 강하게 들었다. 인생의 방향을 찾기 위해서 소위 때부터 많은 시간을 투자해 왔지만, 주변을 둘러보거나 사람들과 교류하는 여유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혼자서 고민하기보다는 타인의 경험과 지혜를 배우는 것이 더 많이 성장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전역 전 휴가 기간이었던 지난 4월 슬럼프가 찾아왔었다. 그동안 내가 했던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전역 이후의 삶이 두렵고 불안하기까지 했다. 그런 내게 큰 힘이 되어 준 것은 사람들이었다. 브런치의 작가분들은 인생 조언을 아낌없이 해주셨고, 국방부에서는 전직지원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진로 설계의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 일본에서 일하시는 다양한 분들과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기회들을 알게 되었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감사했고, 혼자서 고민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군 복무를 하는 동안 타인과의 교류를 좀 더 적극적으로 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3년 반 전 영이가 했던 말이 이제는 이해가 간다. (현재 영이는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행복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으로 마무리한 장교 생활은 내게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다. 좀 더 잘하고 싶었던 마음은, 앞으로의 내게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 줄 것이다. 항상 대한민국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나라에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