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하루라는 것은 존재할까?

by 박지훈

한 달 동안 준비했던 일본어 능력 시험이 끝났고, 며칠간 부산에 가서 놀다 왔다. 날이 더워서 관광은 하지 않았다. 바닷가가 보이는 카페에서 오사카와 교토의 원룸을 알아봤고, 함께 간 동기는 자격증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 때는 바닷가를 걸으며 이야기를 하고 야식을 먹기도 했다.


그렇게 3일을 보내고 동기와 헤어질 때가 되자 공허함이 밀려왔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서 아쉬웠고, 하루이틀 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오랫동안 친형제처럼 지내 왔던 사이였기에 더욱 그런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집에 돌아와서는 부산으로 출발했던 수요일 밤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되풀이했다.

그러면서도 부산에서 보낸 3일이 생산적이지 않았다는 모순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스트레스를 받았다.


당장 다음 달에 오사카로 떠나는데, 지금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만사 의미 없게 느껴졌다. 부동산 계약, 회화 공부, 취업 준비 등 할 게 많은데 의욕이 도통 생기질 않았다. 갑자기 지난 한 달간 일본어 시험 준비를 제대로 못 했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더 열심히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나를 자책하기도 했다.


그렇게 2주 정도를 빈둥거리며 보냈다. 오사카 원룸을 계약하고, 취업 준비와 회화 강의를 알아보는 등 최소한의 할 일만 했다. 평소의 생활 루틴을 지키지도 않았고 별 생각 없이 하루하루 보냈다. 마음은 불편했지만 이 상태를 굳이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슬럼프는 아니었다.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느꼈다. 심리상담사를 만나서 해결책을 찾기로

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말씀을 드리면서, 문제의 근원을 알아내고 싶었다.


장교 생활을 했을 때 늘 열심히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초과근무를 수백 시간 넘게 하면서 맡은 일은 매사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항상 뭐든지 다 잘하고 싶었다. 발성 연습, 근력 운동, 영어 공부 등 내가 하는 모든 것에서 최고가 되길 원했다. 그래야만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군대에서 못하면 사회로 나가서도 못할 거라는 심리적 압박감도 있었다.


완벽한 생활 루틴(수면, 식습관, 운동 등)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성공한 사람들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책과 강의를 이것저것 찾아봤다. 루틴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거나 게으름을 피우면 스스로를 무능하다고 느꼈다. 원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면, ‘아, 이렇게 할걸’ 하면서 자책과 후회를 반복했다.


심리상담사님은 “그렇다면 완벽한 하루가 뭐죠?”라고 물어보셨는데 대답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생각해 보니 완벽한 하루라는 것을 마땅히 정의한 적이 없었다. 그저 남들보다 더 나아지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생산적으로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이다.


하루 생활 루틴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을 100점이라고 한다면, 나는 매일매일이 100점이길 바라면서 살아왔다. 루틴이 하나라도 지켜지지 않거나, 그날 하루 내가 생산적으로 보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70점의 하루, 25점의 하루는 성장하지 못했다는 스트레스만 주었고, 0점과 다를 게 없다고 느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같은 극소수의 사람들은 매일 100점을 추구하는 삶을 살지도 모르겠다. 40살의 나이에도 매일 철저한 식단 관리, 운동, 얼음 요법을 하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물론 난 메시를 더 좋아한다.)


기자회견장에 있는 콜라를 치우는 호날두


아무튼 완벽한 하루란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하지 않은 채, (애초에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겠고) 하루하루가 완벽하길 바라며 스스로를 몰아붙여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매일매일이 스스로와 전투를 벌여왔던 것. 10일간 빈둥거렸던 시간은, 어쩌면 몸이 보내는 신호가 아니었을까? 완벽을 추구할수록 역설적으로 불만족과 자기 회의감이 커져간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깨달은 건 전역하고 나서도 매일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뭔가 아쉬움이 들 때마다 ‘아, 이거 할걸. 시간 낭비했어.’ 이런 식의 사고회로가 끝없이 돌아갔다. 다음날 더 잘하면 된다는 생각보다는, 오늘 하루가 완벽하지 않았다는 스트레스가 더 컸다. 그런 날들이 거듭되며 어느 순간 부정의 늪에 깊게 빠지게 된 것이었다.


어쩌면 내 인생 통틀어 지금이 인생에서 제일 편한 시기일지도 모른다. 전역하고 나서 일본에 가기 전까지 즐길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다. 군 복무를 할 때보다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야 했는데, 지난 두 달간 스스로의 마음을 도리어 지옥으로 만들었다.


그만큼 잘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역하고 나서 바로 취업을 하는 게 아니라, 워킹 홀리데이를 선택한 것은 내게는 큰 도전이자 모험이기 때문이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는 것 자체가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 때가 있다. 1년 뒤에는 도쿄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이 있지만, 과연 생각한 대로 인생이 흘러갈지 알 수 없다.


결국 불확실한 미래를 통제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며, 완벽주의가 여느 때보다 심해진 게 아니었을까?

완벽한 준비를 해서 일본에 가야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줄어들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믿었던 것 같다. (완벽한 하루와 더불어, 완벽한 준비라는 것이 무엇인지 사실은 알지도 못한다.)


네이버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글에서 발췌


이런 감정의 흐름이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상적인 과정이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의 시간이 그동안 인생을 살면서 놓쳤던 무언가를 깨달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100점짜리 하루가 아니어도, 35점짜리 하루여도 괜찮다는 것을 조금씩 체득해 나가려 한다. 물론 내게는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이 감정을 통해 내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뭘까?“

그동안 겪었던 온갖 감정들을, 앞으로의 성장 연료로 써 나가기로 다짐했다. 군대 있을 때 일본으로 가겠다고 다짐했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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