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워홀일기 7화] 오사카에서 만난 이승만 대통령

by 박지훈

알바가 저녁에 끝나는 날에는 우메다에 있는 대형 서점에 방문하곤 한다. 굳이 책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서점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외향성을 학습한 INFP라지만, 타고난 에너지의 한계로 인해 나만의 시간을 갖는 건 매우 중요하다. (ㅋㅋㅋ) 이곳은 한국의 서점처럼 쾌적하고 깔끔한 느낌은 없지만, 자기 계발서의 나라답게 ‘배움’을 사러 오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물씬 준다.


<독립정신> / 국민을 향한 염원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서점 안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국 코너를 발견했다. 무슨 책이 있을까 궁금해서 보러 갔다. 주로 한국 역사와 정치를 다룬 책들이 꽂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이 실린 책이 눈에 띄었다. 일본 서점에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의 사진을 보니, 굉장히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일제 치하 독립운동을 거쳐 대한민국을 건국한 인물. 일본인들에겐 이승만 대통령이 어떤 존재로 비칠까?



역사적, 정치적 인물을 언급할 땐 항상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인간은 편향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건 정상이지만, 객관을 추구하는 행위는 더 많은 관점을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절대적으로 비난하거나 절대적으로 옹호하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나조차도 인생을 살아오면서 숱한 실수를 저질러왔고, 무결점인 사람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빛과 그림자는 늘 함께하기 마련.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 이승만 대통령의 책은, 인생을 나답게 살아갈 용기를 심어 주었다. 당시 그의 눈앞에 놓인 현실은 이러했다.


• 한성감옥에 갇혀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음

• 여기저기 일제의 하수인들이 득실거리고, 심지어 독립운동을 하다가 친일파로 전향한 사람들도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함

• 일제의 식민 통치가 나날이 심해지고 있음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 35년 뒤에 일제가 패망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있었을까? 국민을 지켜줄 수 있는 정부가 없는 상황에서 개인의 목숨을 부지하고,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라면 일제의 하수인이 되는 것이 괜찮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말은 절대로 친일 행위를 옹호하는 것이 아님) 프린스턴대학/하버드대학을 나온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선택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조국을 포기하지 않았다. (프란체스카 여사에 따르면,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 국적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조국을 위해 이를 완강히 거절했다고 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본인이 태어났을 때부터 ‘나는 프린스턴 대학’에 갈 운명이라고 외쳤을까? ’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운명‘이라고 외쳤을까? 일제가 수십 년 뒤 패망할 것을 예상하고 목숨을 걸며 독립운동을 했었을까? 절대 아닐 것이다. 미래에 어떠한 존재가 반드시 될 것이라는 일종의 ‘운명론적 사고’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다만 그는 본인의 신념을 따르며,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았을 뿐이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펴내며, 인간은 의미를 찾는 존재’라고 말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조국의 해방’이라는 의미를 품고 일제에 맞서 싸웠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일제강점기 속에서도 이승만 대통령은 조국 광복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감옥에서 생을 마감할 위기에 놓였을 때도 그는 조선인들에게 당당히 독립정신을 호소하며 책을 써냈다. 지금 우리의 시점에서 보면 대단한 사람이지만, 당시에는 헛된 희망을 품는 망상가라며 온갖 조롱과 멸시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독립을 한다고? 정신 나간 사람이군. 헛소리하지 말고 꺼지쇼.“



그는 묵묵히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갔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다 보니 아이비리그 유학도 하고, 수십 년간 독립운동을 하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까지 되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응애응애! 나는 프린스턴대학에 갈 운명!” 이라며 스스로를 정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의 풍파를 겪어내며 자연스럽게 그에게 맞는 선택지들이 주어졌던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허준이 교수 이야기가 생각났다.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는 서울대 재학 시절 수학에 큰 흥미를 못 느끼다가,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를 만나면서 수학의 길에 들어섰다고 한다. 헤이스케 교수가 허준이 교수를 처음 봤을 때 ‘음, 이 사람은 미래에 필즈상을 받겠군!’ 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자신의 열정을 다해 허준이 교수를 가르쳤고, 허준이 교수는 즐거운 마음으로 수학을 공부하다 보니 필즈상을 받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허준이 교수도 당연히 “오, 나는 필즈상을 받을 운명!”이라 외치며 결과를 좇는 마음으로 수학을 공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미래를 특정한 목표나 결과물로 확정 짓지 않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나가는 삶이야말로 가장 멋지다고 생각한다. 미래는 알 수 없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세상 모든 일을 다 해낼 수 있다는 무한 긍정이 아니다. 그저 스스로를 어느 한 가지로만 정의하는 게 아니라, 잠재력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다.



나의 워홀 생활도 마찬가지다. 워홀은 해외취업을 위한 발판이 아니다. 일본에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미래에 어떠한 존재가 될지 알 수 없기에, 그저 스스로를 믿고 사랑해 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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