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의 끝에서 만나는 가장 순결한 시작
하얀 침묵의 깊이
모든 빛이 물러난 자리,
하얗게 식은 세상의 숨.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나를 천천히 되찾는다.
겨울은 단호한 계절이다.
버릴 것은 버리고,
남을 것만 남기라 말한다.
나무는 잎을 다 내려놓고도
여전히 살아 있다.
그 단단한 침묵을 본받아
내 안의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걷어낸다.
얼음 아래서도
물은 흐르고 있었다.
겉으로 멈춘 듯해도
안에서는 봄을 준비하는 일.
삶도 그렇다.
모든 것이 닫힌 듯해도
마음 깊은 곳에선
작은 새싹이 숨을 고르고 있다.
더 이상 서두르지 않는다.
겨울은, 기다림의 다른 이름이니까.
차가움 속에서도
사랑은 여전히 따뜻하게 흐르고,
그리움은 눈송이로 피어난다.
하얗게 덮인 세상 위로
나의 발자국이 이어진다.
그 길 위에서 문득, 알게 된다.
고요가 가장 깊은 순간이,
곧 다시 시작의 문턱이라는 것을.
진정한 성장은 화려한 결실의 순간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본질만 남은 차가운 고요 속에서 시작된다.
비움의 끝에서 만나는 가장 순결한 시작
모든 빛이 물러난 자리, 하얗게 식은 세상의 숨결이 대지에 내려앉습니다. 화려했던 여름의 초록도, 뜨겁게 타오르던 가을의 절정도 이제는 한 장의 갈색 추억으로 박제되었습니다.
그 적막한 고요 속에서 비로소 타인의 시선이 아닌, 온전한 나 자신을 천천히 되찾기 시작합니다.
겨울은 참으로 단호한 계절입니다.
적당한 타협 없이 "버릴 것은 버리고, 오직 남을 것만 남기라"라고 서슬 퍼런 바람으로 속삭입니다.
앙상한 가지로 선 나무를 봅니다.
잎을 다 내려놓고도 나무는 결코 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장 단단한 침묵을 껴안은 채
제 안의 가장 깊은 곳으로 생명의 온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 정직한 뒷모습을 본받아
내 삶의 불필요한 욕심들을 하나씩 걷어냅니다.
살얼음이 언 시냇물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겉으로는 멈춰버린 시계처럼 고요하지만, 얼음 아래서 물은 여전히 제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멈춘 듯 보여도 안에서는 이미 봄이라는 거대한 부활을 준비하는 일, 그것이 겨울이 감내하는 숭고한 소명입니다.
우리네 삶도 이와 같습니다. 모든 문이 닫히고 홀로 남겨진 듯한 시린 계절을 지날 때,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가장 연약하지만 강인한 새싹이 숨을 고르고 있습니다. 겨울은 절망의 끝이 아니라, '기다림'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숨을 내뱉을 때마다, 우리 안의 사랑은 역설적으로 더 따뜻하게 흐르고 그리움은 하얀 눈송이가 되어 세상의 허물을 덮어줍니다.
하얗게 덮인 세상 위로 나의 느린 발자국이 이어집니다. 그 길 위에서 문득 깨닫습니다. 고요가 가장 깊어 세상이 멈춘 것 같은 바로 그 순간이, 곧 다시 시작되는 생의 문턱이라는 사실을요.
세상의 모든 색이 자취를 감추고 단순한 흑백의 풍경이 펼쳐질 때, 우리는 비로소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게 됩니다. 화려한 잎사귀를 떨구고 나목(裸木)으로 선 나무들은 추위 속에서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가장 단단한 생명의 본질을 지켜내고 있는 것입니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소음조차 하얀 이불 밑으로 숨어버립니다. 이 고요한 계절은 우리에게 멈춤을 권합니다. 분주하게 달려온 한 해의 끝에서 차가운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우리는 버려야 할 것과 간직해야 할 것을 구분하는 지혜를 배웁니다.
겨울은 단순히 추운 계절이 아니라, 봄이라는 찬란한 부활을 위해 온몸으로 견뎌내는 숭고한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멈춘 것처럼 보여도, 모든 생은 여전히 자라고 있습니다.
차가움이 지나간 자리에서 따뜻함은 비로소 선명해집니다. 우리는 그렇게, 가장 깊은 고요 속에서 다시 피어납니다.
눈 덮인 대지는 차갑지만, 그 품 안은 세상 어느 곳보다 포근하게 씨앗을 감싸 안고 있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시린 겨울도 사실은 '나'라는 꽃을 피우기 위한 가장 안전한 자궁일지 모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흐르는 생명력을 믿으며, 이 하얀 평화 속에 당신의 고단함을 잠시 뉘어보시길요.
겨울의 풍경은 단순해서 아름답습니다. 복잡한 생각들을 잠시 내려놓고, 창밖의 시린 공기를 마주하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습니다. 비워낸 자리에 비로소 채워지는 맑은 영혼의 숨소리를 전하고 싶습니다.
추운 날씨에 마음까지 얼어붙지 않도록, 이 글이 서랍 속에 넣어둔 작은 손난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은 이미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시린 마음도 이 하얀 풍경 속에서 위로받기를 바랍니다. 가장 깊은 겨울의 밤은 곧 빛의 시작이기도 하니까요.
by 숨결로 쓰는 biroso나.
소중한 글벗님들, 이 글을 마지막으로 브런치북《숨, 그 결로 나를 품다》를 마무리 지으려 합니다.
끝까지 함께 숨을 고르며 걸어와 주신 글벗님들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말이 되지 못한 날의 마음도 조심스러워 접어둔 생각도 제 문장들에 머무르시며 잠시 내려놓고 가셨기를 바랍니다.
이곳의 글들은 말못한 설움 가득한 날에도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살아내려는 숨의 기록이었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는 지금, 조금이라도 스스로를 더 다정히 안아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함께 숨 쉬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글벗님들의 힘찬 발걸음을 응원합니다^^
#겨울로의길 #멈춤 #비움과채움 #기다림 #명상 #치유의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