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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후에 남는 문장, 사랑의 마지막 페이지>

이별 후 자아의 서사를 고쳐 쓰는 윤리적 재번역법

by 숨결biroso나

이별의 부재로 드러나는 자아의 서사를 윤리적으로 재번역하는 기술에 대하여







1. 문장이 끝나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


“슬픔은 문장의 내용에 있지 않고, 문장들 사이에 숨겨진 침묵의 악센트에 있다."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Roland Barthes, 실존적 맥락에서 발췌 및 재해석)


이별은 단순한 관계의 종결이 아닙니다. 그것은 관계의 언어가 무력해진 곳에서 시작되는 절대적인 침묵입니다. 이 침묵은 상대와 더 이상 대화하거나 오해할 수 없는 부재(不在)를 선언합니다. 그러나 이 침묵은 공허한 빈자리가 아니라, 사라진 모든 문장과 기억의 무게를 지탱하는 여운을 남깁니다. 이 여운은 소리가 멈춘 후에도 우리의 신경망을 울리는 진동이며, 기억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는 과거의 언어입니다.

이별 후 번역해야 할 가장 중요한 텍스트는 이러한 흔적입니다. 이는 단순한 고통이 아닙니다. 그것은 과거의 서사를 현재의 나의 언어로 고쳐 쓰는 계기임을 뜻합니다. 사랑은 텍스트로 쓰였지만, 그 마지막 페이지의 여백은 윤리적인 재번역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거를 단순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의미를 위해 끊임없이 재해석해야 한다는 철학적 관점에 따르면, 이별 후의 여운은 과거가 현재로 침투하는 침입자 같은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아직 ‘번역하지 못한 문장들’의 존재 증거입니다. 이는 단순한 고통의 흔적을 넘어, 이제 우리가 현재의 언어로 번역해야 할 미완의 텍스트인 것입니다.
​이 글은 바로 이 흔적을 지워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 번역해야 할 자료로 다루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2. 마지막 말의 오해가 관계의 서사를 지배하는 이유

이별의 순간에 주고받는 말들은 감정적 과부하 상태에서 나오기 때문에 늘 가장 큰 오역의 불완전성을 갖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잘 지내요”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는 중립적 인사지만, 이별 직후의 심리 상태에선 다음과 같이 과잉 해석되기도 합니다.

“너와의 관계는 끝났다.”
“나는 너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는 이미 괜찮다.”

이러한 오역은 우리의 기억 편집 메커니즘에서 비롯됩니다. 고통을 느끼는 우리의 뇌는 상대의 말을 가장 극단적인 의미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분노를 느끼는 사람은 상대의 말을 악의로, 슬픔을 느끼는 사람은 무관심으로 번역하여 고통을 줄이려 합니다. 이 과정에서 상대의 의도는 사라지고 파괴적인 결과만이 남습니다. 이 마지막 말의 오역은 관계가 끝난 후에도 우리의 기억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며 후회와 원망이라는 족쇄를 만들게 되는 부분입니다.

이는 상대의 말이 문제라기보다, 우리의 뇌가 고통을 줄이기 위해 ‘단순하고 잔혹한 의미’로 내용을 재구성하기 때문입니다. 즉, 마지막 문장의 오역은 피할 수 없는 인지적 결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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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조용한 위로를 믿습니다. 오늘도 삶을 살아내는 분들에게 마음이 먼저 도착하는 문장을 씁니다. 깊은 숨결로 마음을 건네는 사람, 에세이스트 'biroso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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