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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화해, 진실보다 먼저 반응하는 감정의 속도>

화해는 논리의 정답이 아닌, 감정의 온도를 맞추는 일

by 숨결biroso나

상처를 입히는 언어와 회복을 번역하는 언어의 이중성에 대하여





1. 말과 마음 사이의 미세한 어긋남

“우리가 타인의 말을 오해하는 이유는 듣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 이다.”
-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안 좋은 관계의 대부분은 오해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오해는 끝내 관계의 결말을 결정짓습니다. 우리는 종종 ‘말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먼저 듣습니다. 같은 문장이라도 마음의 온도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되게 됩니다. “괜찮아”라는 한마디가 어떤 날에는 위로로 들리고, 어떤 날에는 무관심으로 들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심리학자 폴 왓츠라윅은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자신의 경험 언어로 번역한다.” 상대의 의도는 그 순간 사라지고, 남는 것은 내 감정의 번역본입니다. 오해는 언제나 ‘상대의 말’에서가 아니라 ‘나의 해석’에서 시작됩니다.





2. 오해의 첫 번째 원인 - 감정의 자동 번역

사람들은 종종 듣는 동시에 반응합니다. 부모의 “공부 좀 해라”는 충고는 “넌 부족하다”로, 동료의 “오늘 왜 이렇게 조용해?”는 “기분 나쁘니?”로 바뀝니다. 이것이 감정의 자동 번역입니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인간의 사고 체계를 두 가지로 나눴습니다. 하나는 빠른 생각(직관)이고, 다른 하나는 느린 생각 (이성) 입니다. 오해는 대부분 빠른 생각, 즉 직관의 과속으로부터 발생합니다. 감정은 언제나 해석보다 앞서 달립니다. 상대의 문장을 듣기도 전에 내 안의 경험 데이터가 이미 결과를 예측해 버리곤 합니다.

한 연구에서는 흥미로운 실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사람들에게 모호한 표정의 사진을 보여주고, “이 사람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라고 물었습니다. 대부분의 참여자는 상대의 실제 표정보다 자신이 느낀 감정 상태에 맞춰 해석 했습니다. 기분이 좋은 사람은 ‘미소’로, 불안한 사람은 ‘비웃음’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상대의 얼굴’을 보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의 거울’을 보고 있는 셈입니다.





3. 오해의 두 번째 원인 - 침묵의 미숙함

오해는 말에서만 생기지 않습니다. 침묵에서도 자라납니다. 어떤 이는 말이 너무 많아서 오해를 부르고, 또 어떤 이는 말이 없어서 오해를 부릅니다. 친구가 나의 긴 메시지에 하루 종일 답이 없을 때, ‘바쁜가 보다’보다 먼저 드는 생각은 ‘혹시 내가 무슨 말을 잘못했나?’입니다. 하지만 침묵은 종종 ‘거리두기’가 아니라 ‘정리의 시간’ 일뿐입니다. 침묵이 언제나 거절이나 냉담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커플 심리학자 존 가트먼은 20년 이상 부부의 대화를 관찰하며 말했습니다.
“관계가 무너지는 가장 큰 이유는 싸움이 아니라, 감정적 무응답(Emotional Stonewalling)이다.”
그 무응답이 정말로 ‘무관심’ 일 때도 있지만, 종종 그것은 감정이 과열되지 않기 위해 잠시 물러나는 감정의 완충 작용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휴식조차 ‘단절’로 해석해 버립니다. 침묵은 원래 평화를 위한 언어였지만, 오해가 개입하는 순간 고립의 언어가 됩니다.





4. 오해의 세 번째 원인 - 언어의 모호함


언어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인간의 세계는 언제나 ‘불완전한 표현’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우리는 명확히 말하려 하지만, 단어 하나에도 수십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괜찮아”는 세 글자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뜻이 있습니다.


“진짜 괜찮아.” - (억지로 버팀)
“괜찮다니까.” - (말하기 귀찮음)
“괜찮아.” - (진심으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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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조용한 위로를 믿습니다. 오늘도 삶을 살아내는 분들에게 마음이 먼저 도착하는 문장을 씁니다. 깊은 숨결로 마음을 건네는 사람, 에세이스트 'biroso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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