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말의 갈기를 잡고>

어둠을 가르고 일어선 불꽃이여

by 숨결biroso나


어둠의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선명한 핏줄 하나


병오(丙午)의 들판,
아직 아무도 딛지 않은 설원 위
붉은말의 뜨거운 콧김


달려온 길은

흉터가 아니었음을,


꺾인 무릎은

더 높이 튀어 오르기 위한
대지의 부름이었음을.


거친 갈기를 손에 꽉 쥐고
심장 소리에 박자를 맞춰 걷는 아침


태양을 머금은 눈동자가 나를 비출 때
비로소 거대한 문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열린다.


가거라,

너의 가장 뜨거운 계절로.


타오르되 재가 되지 않는
다정한 불꽃이 되어


누군가의 시린 손을 잡아주는
한 필의 붉은 바람이 되어.




설날 새벽,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공기가 차갑지만 명징합니다. 어제와 똑같은 태양이 솟았을 뿐인데, 또 한 번의 새해가 밝았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속에는 묘한 긴장감과 설렘이 교차하곤 하지요.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눈을 뜨셨나요? 떡국 한 그릇에 나이 한 살을 더 얹으며, 다시 한번 '잘 살아보겠다'는 무해한 다짐을 가슴에 품어봅니다.




​ 2026년 '병오년(丙午年)' 육십 간지 중 43번째에 해당하는 해로 붉은색을 뜻하는 '병(丙)'과 말을 의미하는 '오(午)'가 만나 '붉은말의 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동양학적으로 오(午)는 정남향이자 가장 뜨거운 여름의 기운을 상징합니다.


붉은말이라니, 생각만 해도 생동감이 넘치지 않나요? 지치지 않고 대지를 달리는 말의 역동성과 만물을 비추는 태양의 열기가 합쳐진 형상입니다.

이 뜨거운 기운을 단순히 '성공'이나 '질주'로만 해석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면의 열정을 잃지 않으면서도, 타인을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온기'로 채워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내 안의 붉은말에게 조금 다른 속삭임을 건네고 싶습니다.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심장이 정말로 원하는 방향을 향해 근육을 움직이는 정직한 질주를 말입니다.


​사실 우리네 삶은 그리 거창하지 않습니다. 뉴스에서는 연일 세상을 바꿀 기술과 거대한 담론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건 퇴근길에 산 붕어빵의 온기, 서툴게 건넨 위로 한마디, 그리고 가족과 함께 나누는 소박한 저녁 식사 같은 '사람 냄새' 나는 순간들입니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곁에 있는 소중한 풍경을 놓치고 있지는 않았는지, 설날 새해의 첫머리에서 잠시 멈춰 서봅니다. ​계획했던 일을 지키지 못해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 다시 하면 돼"라고 말해줄 수 있는 여유가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태양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비치지만, 그 빛을 받아 꽃을 피우는 시기는 저마다 다르지요.

남들이 세운 기준에 맞추려 애쓰기보다, 나만의 속도로 뚜벅뚜벅 걷는 용기를 내어보시길요,




병오년은 뜨겁게 타오르는 성취의 시간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시린 손을 잡아줄 수 있는 따스한 온기의 시간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2026년은 더 많이 사랑하고 더 깊이 공감하는 해로 채워가려 합니다. 붉은말처럼 대지를 박차고 나아가되, 발굽에 닿는 풀꽃 하나, 곁에서 숨 가쁘게 달리는 동료의 얼굴을 한 번 더 살피는 다정함을 잊지 않겠습니다.

숫자로 증명되는 삶보다, 마음의 결로 기억되는 삶을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는 저 또한 올해는 더 깊이 스며드는 문장을 전하고 싶습니다. 화려한 수식어로 치장된 글보다는, 읽는 이의 고단한 어깨를 가만히 토닥여줄 수 있는 투박한 진심을 담고 싶습니다.


이제 다시 신발 끈을 고쳐 맵니다. 누군가와 비교하며 조급해하지 않기로 합니다. 때로는 비틀거리고 때로는 멈춰 서겠지만, 그 모든 순간이 '나'라는 문장을 완성해 가는 소중한 과정임을 믿습니다.


내 안의 작은 화로에 불을 지피고, 그 온기로 또 한 해를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 오늘 쓴 이 글을 다시 읽을 때쯤 어떤 숲을 이루고 있을까요? 설레는 마음으로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by 숨결로 쓴다 ⓒbiroso나.



붉은말의 기운이 사그라들지 않는 불씨가 되어, 가장 추운 날에도 우리를 따뜻하게 지켜주기를 소망합니다.

병오년의 붉은 기운이 글벗님들의 삶에 기분 좋은 박동을 더해주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깊이 사랑하고, 주변의 온기를 나누는 넉넉한 한 해가 되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2026년 #병오년 #설날 #나의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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