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연단을 지나, 다시 광장의 숨결로
가장 깊은 동굴 속에서 홀로 조각칼을 쥐었던 정적의 시간들이 비로소, 광장 위에 나를 다시 세우는 단단한 뼈대가 되었다.
<광장의 윤슬>
어둠은 나를 가두는 벽이 아니라
오직 나에게만 집중하라는
우주의 배려였다
동굴 벽면에 새긴 문장들은
피 흘리는 상처가 아니라
새살을 돋우기 위한 비옥한 토양이었다
이제 나는 동굴의 문을 밀어낸다
쏟아지는 광장의 햇살이
내 몸의 정 자국마다 스며들어
찬란한 윤슬로 피어난다
무너졌던 자리가
가장 눈부시게 빛나는 아침이다
<어둠의 연단을 지나, 다시 광장의 숨결로>
동굴의 입구는 무거웠다. 타인의 악의로부터 나를 격리하기 위해 선택한 자발적 고립이었으나, 초기에는 그 적막조차 칼날이 되어 나를 찔렀다. 직장에서 겪은 수모와 상사의 비릿한 이간질이 환청처럼 동굴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억울함이라는 습기가 가득한 그곳에서 나는 매일 밤 내가 겪은 불행의 정당성을 증명하려 애썼다. 그러나 분노가 바닥을 드러내고 증오의 불길이 잦아들자,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손끝에 잡히기 시작했다.
그것은 타인의 인정이라는 거푸집에 갇혀 짓물러가던 '나'라는 원석이었다. 상사가 휘두른 무자비한 망치질은 역설적이게도 나를 옥죄던 가짜 껍데기들을 부수고 있었다. 모두에게 사랑받아야 한다는 강박, 내일의 안위를 위해 오늘의 비굴함을 견디던 유약한 책임감들. 바닥에 뒹구는 그 파편들을 하나하나 골라내며 나는 깨달았다.
부서진 것은 내가 아니라, 내가 '나'라고 믿어왔던 허상들이었음을. 나는 흙투성이가 된 손으로 내 안의 가장 단단한 핵을 만졌다.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오직 나만이 빚을 수 있는 생의 재료가 그곳에 있었다.
문장이라는 정(釘)으로 벼린 내면의 곡선
동굴의 정적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작업실로 변모했다. 나는 브런치라는 하얀 대리석 위에 내 상처 입은 영혼을 올렸다. 글을 쓰는 행위는 내게 단순한 기록이 아닌, 정교한 조각 도구였다. 예전에는 타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문장을 골랐다면, 이제는 내 멍든 속살을 살피고 뼈대를 세우기 위해 단어를 벼렸다. "나는 아프다"라고 적었을 때 문장은 서늘한 비명이 되었고, "그럼에도 다시 걷겠다"라고 적었을 때 문장은 단단한 근육이 되었다.
매일 새벽 자판을 두드리는 규칙적인 소리는 동굴 안을 울리는 망치질이었다. 한 문장을 완성할 때마다 내 안의 뭉개진 선들이 조금씩 살아났다. 상사가 뱉은 가시 돋친 말들은 나를 빚는 데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깎아내는 공정이 되었고, 고독했던 침묵의 시간은 반죽을 단단하게 굳히는 숙성의 계절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유약한 진흙 덩어리가 아니었다. 나는 내 고통을 재료 삼아, 세상에 단 하나뿐인 형상을 빚어가는 주체적인 조각가로 거듭나고 있었다. 문장이 쌓일수록 동굴의 천장에서는 조금씩 빛의 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다시 광장으로, 낯설고도 단단한 호흡
어느덧 내 안의 조각상이 제법 단단한 뼈대를 갖추었을 때, 나는 동굴 입구를 막고 있던 무거운 침묵의 바위를 밀어냈다. 눈부신 광장의 빛이 쏟아졌다. 다시 돌아온 일터, 그곳은 여전히 콘크리트의 냉기와 서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누군가는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고, 누군가는 여전히 날 선 눈빛을 보냈고, 상사의 목소리는 여전히 비단 속에 칼을 감추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 발바닥에 닿는 지면의 질감은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예전의 내가 그들의 눈빛 하나에 부서질 듯 흔들리는 투명한 유리였다면, 지금의 나는 동굴 속에서 수만 번 담금질된 청동과 같다. 나에게 던지는 비아냥은 내 표면에 닿자마자 경쾌한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갔다. 나는 이제 알고 있다. 그가 내 겉면을 긁어낼 수는 있어도, 내 안의 깊은 핵(核)까지는 결코 침범할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 틈에 섞여 묵묵히 나의 일을 하고, 틈틈이 나의 숨결을 글로 옮긴다. 소란스러운 광장 한복판에서도 내 안의 고요한 작업실을 잃지 않는 법을 배웠다. 나의 숨은 이제 타인의 인정이 아닌, 나의 가슴에서 시작되어 세상을 향해 뻗어 나간다.
지금 나를 빚는 숭고한 노동
인생은 완성을 공표하는 전시회가 아니라,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자신을 빚어가는 끊임없는 공정이다. 고단하지만 아름다운 살아있음의 기록, 나는 여전히 빚어지는 중이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풍파가 내 곡선을 일그러뜨리려 할 것이고, 누군가는 나의 미완성된 부분을 보고 혀를 찰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는다. 부서져 본 사람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알고, 깎여본 사람은 무엇이 본질인지 알기 때문이다.
오늘도 퇴근길의 소음 속에서, 혹은 새벽의 짧은 여백 속에서 문장이라는 정을 들고 나를 빚는다. 타인의 악의가 남긴 깊은 흉터마다 '나다움'이라는 금가루를 채워 넣는다. 그 흉터들은 이제 상처가 아니라,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빚어냈다는 가장 찬란한 무늬가 되어 빛난다.
나는 비로소 광장의 주인으로, 나의 숨결로 빚은 세상 앞에 당당히 선다.
가장 깊은 동굴 속에서 홀로 조각칼을 쥐었던 정적의 시간들이 비로소, 광장 위에 나를 다시 세우는 단단한 뼈대가 되었다.
비명이 단단한 돌에 박히고
파편이 눈에 들어와 먼지가 될 때까지
나는 나를 잃어가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먼지가 가라앉은 작업대 위
그곳에 남은 것은
타인이 깎아낸 상처가 아니라
비로소 드러난
'나'라는 생생한 속살이었다
이제 나는 부서진 조각을 줍는다
아픔을 연고 삼아
다시 나를 빚기 위하여
완벽하게 매끄러운 조각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명력이 거친 정 자국이 선명한 내 삶의 표면에서 끓어오른다. 무너진 자리가 가장 단단하게 굳는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지금 나는, 광장 한복판에서 가장 나다운 숨결로 살아가고 있다.
침묵의 동굴 안에서 제가 건져 올린 것은 결국 '나'라는 이름의 원석이었습니다. 다시 복귀한 일터는 여전히 추울 때도 있지만, 이제 제 안에는 그 추위를 이길 수 있는 작은 화로 하나가 지펴져 있습니다. 이 글이 다시 밖으로 나가길 망설이는 당신에게 온기가 되길 바랍니다.
동굴의 어둠은 빛으로 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암전이었습니다. 아팠던 어제의 파편들이 모여, 오늘 가장 나다운 작품이 되었으니까요.
타인의 손에 나를 맡기지 않을 때, 비로소 나의 선이 살아납니다.
by 숨결로 쓰는 biroso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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