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의 기억 >

내 마음도 다시 돌아오고 있었음을

by 숨결biroso나
이슬의 기억, 고요는 비어 있음이 아니라 마음이 응축되는 시간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한다.

괜찮았다고,
별일 아니었다고,
그렇게 하루를 접는다.

하지만 새벽은 안다.

삼켜진 말이 몇 개였는지
참아낸 표정이 몇 번이었는지

말로 나오지 못한 마음들이
어디에 머물러 있었는지.

그 모든 것이
풀잎 끝에서
투명하게 드러난다.




사라진 줄 알았던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맺힐 시간을 기다릴 뿐이다.




밤은 말이 없다.
설명도 변명도 없이
조용히 식는다.

창을 열면
어젯밤의 공기가 아직 남아 있다.
차갑게 식은 난간 위로
보이지 않던 숨들이 모인다.

풀잎 끝에 맺힌 이슬을
손끝으로 건드려 본다.

살짝 떨린다.
떨어질 듯 흔들리다
끝내 버틴다.

그 작은 버팀 속에서
밤이 아직 떠나지 않았다는 걸 안다.

이슬은
흩어져 있던 습기들이
마침내 머물 자리를 허락받았을 때
비로소 몸을 얻는 순간이다.

마음도 그렇다.

우리는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감정을 접어 넣을까.

“괜찮아.”라고 말하며 웃었지만
물을 틀어놓고
한참 등을 돌리고 서 있던 저녁.

회의가 끝난 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혼자 입술을 꾹 깨물던 오후.

아이 방문 앞에 서 있던 밤도 있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문틈 아래로 새어 나오던 불빛이
오래도록 가슴을 건드렸다.

그 감정들은
그 자리에서 끝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다.

서랍 속 영수증처럼
버리지도 못하고
꺼내 보지도 않은 채
겹겹이 접혀 있다.

빛이 바래 숫자는 흐려졌는데
지출의 흔적만 또렷하게 남은 종이처럼
마음의 사용 내역이
조용히 남아 있다.

그러다 새벽.
아무 일도 없는 시간에
문득 가슴이 젖는다.

그건 약해진 것이 아니다.
맺힐 시간이 온 것이다.

이슬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는 보여도 괜찮다며
조용히 몸을 만든다.

덜 마른 채로 개어 넣은 옷처럼
미처 마르지 못한 감정이
다시 차갑게 젖어 나온다.

우리는 그때 알게 된다.

끝난 줄 알았던 마음이
아직 숨 쉬고 있었다는 것을.

햇살이 닿기 직전의 이슬은
가장 또렷하다.

사라질 걸 알면서도
잠시 더 버텨낸다.

나는 그 장면을 오래 본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햇살이 오기 전의 투명함이 가장 또렷하다. 우리는 사라짐을 알면서도 맺히는 존재다.




내 마음도 다시 돌아오고 있었음을.



새벽 햇살 한 줄기가 닿으면
이슬은 반짝이며 사라집니다.
하지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시 공기 속으로 퍼져 나갈 뿐입니다.

우리는 그런 순환 속에서
조금씩 단단해지고,
조금씩 가벼워지고,
조금씩 자신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슬은 밤의 기록이자
마음의 가장 부드러운 형태입니다.
흩어져 있던 것들이 모여
마침내 하나의 존재가 되는 순간.

그 순간,
우리는 알아차립니다.

내 마음도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고 있었음을.




by 《그 자리에 핀 마음》 ⓒbiroso나.



가장 작은 이슬이
가장 깊은 마음을 드러낸다.
흩어진 감정은 언제나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이슬의 기억, 고요는 비어 있음이 아니라 마음이 응축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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