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자라는 마음
행복의 창문을 두드리는 불행의 집요한 시선, 무심한 태양과 간절한 그림자
그림자는
태양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그저
빛이 기우는 방향으로
몸을 늘인다.
태양은
자신을 따르는 어둠을
돌아본 적 없다.
그 무심함이
풍경을 만든다.
닿지 못해도
끝내 따라가는 발걸음.
행복은 불행에 관심이 없고,
불행은 행복에 관심이 많다.
불행 속에 머물던 시간은
늘 습기가 차 있었다.
방 안은 조용했지만, 생각은 시끄러웠다.
행복한 사람의 웃음이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
그들의 걸음이 얼마나 가벼운지,
그들의 표정에 불안이 스미는 순간은 없는지.
마치 현미경을 들이댄 학자처럼,
나는 타인의 평온을 관찰하며
나의 결핍을 분석했다.
'왜 나는 저들처럼 편안하지 못할까.'
'왜 나의 잔에는 늘 식어가는 온기만 남아 있을까.'
불행은 ‘부족함’이라는 언어를 가르쳤다.
그리고 그 언어로 나는 행복을 불렀다.
찬 바람이 부는 날,
창밖에 서 있는 나와
실내에서 책을 넘기는 사람 사이에는
얇은 유리 한 장이 있었다.
그들은 나를 모른다.
나의 추위를 모른다.
그 무심함이 서러웠다.
그러나 그 무심함이 있었기에
나는 끝까지 빛을 바라볼 수 있었다.
행복은 불행을 분석하지 않는다.
행복은 스스로를 증명하지도 않는다.
그저 존재한다.
빛은 어둠을 설득하지 않는다.
다만 켜져 있을 뿐이다.
행복의 작은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놀랍게도 세상은 단순했다.
거창한 설명도
철저한 해석도 필요 없었다.
따뜻한 차 한 모금,
누군가의 눈빛 하나,
아침 공기의 맑은 숨.
그 순간들은
불행의 긴 분석을 조용히 멈추게 했다.
행복은 나에게 ‘지금’을 가르쳤다.
불행이 결핍을 향해 눈을 크게 뜨게 했다면,
행복은 이미 있는 것을 놓치지 말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불행이 행복을 향해 쏟아부었던 그 간절함이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어둠 속에서 별을 찾던 눈이
이제는 작은 빛에도 먼저 반응한다.
불행은 나를 무너뜨리려 했던 시간이 아니라
나의 감각을 예민하게 벼린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내 마음의 풍경은
이 두 시선이 겹쳐 만들어진다.
깊게 파인 우물 같은 결핍 위에
잔잔히 고이는 충만.
완벽히 밝지도, 완전히 어둡지도 않은 자리.
그곳에서
나는 오래 머무를 수 있다.
빛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자라는 마음
병원 복도는 유난히 길었다.
형광등 빛은 지나치게 밝았고,
의자는 차가웠다.
그 의자에 앉아
닫힌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괜찮은 걸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기다렸다.
복도 저편에서는
다른 이들이 조용히 통화를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따뜻한 커피를 뽑아 들고 돌아왔다.
그들의 표정은 평온했다.
나는 그 평온을 오래 바라보았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고요할까.'
'왜 나는 이렇게 떨리고 있을까.'
그 밤, 나는 바깥에 서 있는 사람 같았다.
유리창 너머의 따뜻한 풍경을
엿보는 사람처럼.
불행은 나를 작게 만들지 않았다.
대신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형광등의 깜박임도,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도
모두 크게 다가왔다.
나는 그 소리들 사이에서
작은 기도를 붙잡고 있었다.
행복은 그날 나를 위로하지 않았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약속도 없었다.
그저, 어느 순간 문이 열렸고
짧은 한 마디가 떨어졌다.
“ 일단 고비는 넘겼으니
안정을 취하세요.”
그 말 한 줄이
형광등보다 더 밝게 복도를 채웠다.
나는 그제야 숨을 깊이 들이켰다.
행복은 요란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이긴 것도 아니고
세상을 바꾼 것도 아니었다.
다만. 한 문장이
무너지지 않게 나를 붙들었다.
불행이 파놓은 깊은 자리 위에
행복은 고인다.
그 자리가 얕았다면
그 말 한 줄이 이렇게 오래 머물지 못했을 것이다.
빛은 늘 거기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그날 밤에 그 온도를 느꼈다.
지금도 그림자는 항상 따라다니고
여전히 나는 불안해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림자가 길어질수록
빛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쉽게 꺾이지 않는 조용한 평온 하나.
그 자리에 핀 마음
행복의 침묵, 무심한 태양 아래 기어이 피어난 마음
마침내 들어선 행복의 문턱, 그 본질이 '무심함'임을 깨달았다. 보석이 스스로 빛날 뿐 먼지를 의식하지 않듯, 행복은 충만함 그 자체로 어둠을 밀어낸다.
행복이 찾아오면 시야는 단순해지고, 나를 괴롭히던 거대한 고민들은 지금 이 순간의 온기 앞에 고요히 입을 다문다. 불행이 결핍을 분석하게 했다면, 행복은 오직 현재를 향한 온전한 몰입을 가르친다.
이 비대칭의 관계 속에서 영혼은 비로소 깊어졌다. 불행이 쏟았던 간절한 관심은 역설적으로 지금의 행복을 지탱하는 단단한 토양이 되었다.
긴 터널을 지나며 마주한 아침의 감사와 곁의 위안은 불행이 내게 남긴 소중한 메모들이다. 불행의 간절함이 판 깊은 우물에 행복의 무심한 고요가 차오른다.
진정한 평온은 불행을 지운 것이 아니라, 그림자 속에서도 내 안의 빛을 놓치지 않는 단단한 평화임을 이제는 안다.
< 비대칭의 궤도 >
태양은 그림자를 낳고도
그 어두운 안부를 묻지 않는다.
빛의 정수리에 고인
눈부신 무관심
행복은 스스로 충만하여 고요하고
그림자는 닿지 않는 빛의 궤적을 쫓으며
제 길이를 겨우 증명한다.
닫힌 창틈으로
타인의 빛을 바라보며 살았다.
그들의 무심한 웃음이 나의 결핍을 닦아낼 때
비로소 '살고 싶다'는 간절함을 배웠다.
행복의 무심함은 요새였고
불행의 시선은 빛을 향한 이정표였다는 것을
깊게 파인 마음의 우물 위로
고요한 침묵이 차오를 때 비로소 깨달았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 것은
내 뒤에 아주 커다란 빛이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임을.
나는 이제 비대칭의 평화 속에 누워
그 자리에서 피어난 마음을 본다.
톨스토이는 그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고 했습니다.
행복이 모두 닮아 보이는 이유는 그 평온함이 지닌 무심한 질서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반면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한 우리는, 그 결핍의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행복의 빛을 훔쳐봅니다.
닮아 있기에 무심한 행복과, 제각각의 빛깔로 앓기에 간절한 불행. 그 어긋난 시선이 머무는 자리를 봅니다.
우리는 종종 불행을 없애야 평온해질 수 있다고 믿곤 하지요.
그러나 어쩌면 불행은 우리를 행복 쪽으로 밀어 올리는 힘일지도 모릅니다.
결핍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일수록, 작은 온기에도 깊이 머물 수 있으니까요.
by 《그 자리에 핀 마음》 ⓒbiroso나.
행복은 불행을 지워낸 자리에 오지 않는다.
오래 견딘 자리 위에 조용히 피어난다.
무심한 태양처럼, 우리의 마음도 스스로 충만해 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마주한 작은 햇살 한 줌이 그 여정의 시작이길 바랍니다.
#행복의역설 #그자리에핀마음 #내면의평화
#안나카레리나 #행복 #불행 #비대칭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