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침묵이 빛의 환희로 치환되는 순간
손등 위에
빛이 먼저 도착했다.
아직 마음은 겨울에 있는데
몸은 이미
다른 계절을 느끼고 있었다.
닿자마자 사라질 것 같은 온기
그 얇은 떨림 하나로
그제야 알았다.
나는 얼마나 오래
나를 늦추고 있었던 걸까?
차오르는 봄
빛이 내 마음을 다시 펼쳐놓는 방식
창가에 앉아 무심히 올려둔 손 위로, 햇살이 아주 얇게 번지고 있었다.
겨울 내내 느껴보지 못했던 온도였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러나 분명히 살아 있는 온기.
한동안 손을 그대로 두고 있었다.
움직이면 사라질 것처럼,
조금만 무심해지면 놓쳐버릴 것처럼.
겨울 동안 나는 늘 어딘가로 쏠려 있었다.
생각은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고,
마음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자꾸만 바깥을 맴돌았다.
그날의 말들,
끝내 닿지 못한 마음들,
괜히 오래 붙잡고 있었던 장면들이
어딘가에 젖은 채로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이 작은 온기 하나가
나를 오래 붙잡았다.
사람들은 봄이 온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늘 조금 다르게 느껴왔다.
봄은 오는 것이 아니라,
'차오르는 것' 것 아닐까 하고
비어 있던 공기 속에
보이지 않던 밀도가 생기고,
마른 줄 알았던 바람에
아주 얇은 습기가 스며드는 것처럼.
그 변화는 늘 아주 작게 시작된다.
오늘의 햇살은 어제와 다르지 않은 것 같고,
바람의 방향도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지만,
손등 위에 내려앉은 빛의 온도가
분명히 달라져 있다.
몸은 늘 먼저 알고 있다.
아, 계절이 바뀌고 있구나.
손을 뒤집어보았다.
빛이 닿지 않는 쪽은 여전히 조금 서늘했다.
그 순간
며칠 전 지나간 절기 '춘분'이 떠올랐다.
낮과 밤이 같은 길이로 마주 서는 날.
빛과 어둠이 서로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 나란히 놓여 있는 시간.
나는 그 균형을
손 위에서 실감했다.
빛이 닿은 곳과 닿지 않은 곳이
같은 손 위에 함께 있었다.
어쩌면 삶도
그런 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건 아닐까.
지난 계절들의 나는
어둠과 빛을 자꾸 나누어 생각했다.
어둠이 길어지면
이 상태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불안했고,
잠깐 햇볕이 들면
이 온기가 오래 머물 줄 알고 안심했다.
하지만 그건 늘 틀린 예상이었다.
어둠은 끝났고,
빛도 결국 지나갔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는 늘 다시 나를 정리해야 했다.
손등 위의 빛은
그 모든 과정을 아무 말 없이 설명해주고 있었다.
완전히 밝아지지 않아도 괜찮고,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빛과 어둠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함께 있어도 된다고.
그 사실을
이렇게 작은 온도 하나로 배우고 있었다.
창밖의 나무를 바라보았다.
가지 끝마다
아직 터지지 않은 작은 망울들이 맺혀 있었다.
가까이 보지 않으면 놓칠 만큼 작았지만,
분명히 거기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모든 것이 시작된 상태.
나는 그 풍경을 보며
내 안을 떠올렸다.
나는 아직 변하지 않은 것 같고,
여전히 제자리인 것 같고,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것 같지만
어쩌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이미
무언가가 조용히 올라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주 서두르고 한다.
남들보다 늦은 것 같고,
다른 사람은 이미 피어 있는 것 같고,
나만 아직 멈춰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마음은 쉽게 조급해진다.
하지만 나무는
옆 나무를 바라보지 않는다.
먼저 피었다고 서두르지 않고,
늦었다고 멈추지도 않는다.
그저 자기 몸 안으로 올라온 시간만큼만
피어난다.
나는 손을 다시 창가에 올려두었다.
빛이 조금 더 넓게 번졌다.
그 온기를 느끼면서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잘 살아내고 있던 거지?
그 질문은
이전처럼 불안하게 떠돌지 않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라앉아
가슴 어딘가에 닿았다.
그리고
대답처럼 느껴지는 감각이 올라왔다.
괜찮다고...
완전히 괜찮지 않아도,
지금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겨울을 통과한 숨은
조금 더 깊어졌고,
차가운 시간을 버틴 마음은
이전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삶은 언제나
완벽한 밝음이나 완전한 어둠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조금 슬프고,
조금 다행인 날들이 겹쳐지면서
비로소 견딜 수 있는 밀도가 만들어진다.
나는 그 사실을
오늘
손등 위의 온도 하나로 다시 배웠다.
빛은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더 하라고도,
더 나아지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여기까지 잘 왔다고 말하듯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그 빛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손을 내렸다.
온기는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피부 안쪽에 남아 있었다.
그 순간 알았다.
봄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서
천천히 차오르고 있었다는 것을.
오늘의 빛은 크지 않았지만 충분했다.
손등 위에 내려앉은 그 얇은 온기가
나를 다시 제자리로 데려왔으니까.
겨울 내내 한쪽으로 쏠려 있던 시린 생각들을 가지런히 펴서 볕 좋은 곳에 널어두고 싶은 그런 날.
춘분(春分), 멈추어 선 마음의 눈금
세상은 비로소, 공평한 무게를 갖기로 했습니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우주의 거대한 톱니바퀴가 딱 맞물리는 지점. 춘분 날에 말이죠. 낮과 밤이 서로의 영토를 탐내지 않고 정확히 절반씩 나누어 갖는 이 기묘한 균형 앞에 서면, 우리 안의 기울어진 축들도 제자리를 찾으려 꿈틀거립니다.
이 경계의 시간 속에서 문득 '회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봅니다. 자연은 늘 자신만의 언어로 말을 건네지만, 그것을 기쁨으로 읽을지 혹은 찬란한 슬픔으로 읽을지는 오롯이 나의 몫입니다.
지난 계절, 얼마나 많은 오해 속에서 헤맸던가. 어둠이 길어질 때면 영원히 빛을 잃은 듯 절망했고, 짧은 볕 아래서는 그 온기가 영영 머물 줄 알고 자만했습니다.
춘분은 그런 우리에게 어둠과 빛은 결국 하나의 몸이라는 사실을, 낮이 깊어지면 밤이 오고 밤이 깊어지면 다시 낮이 온다는 그 지명한 진리를 수평의 감각으로 일깨워 줍니다.
이제 막 기지개를 켜며 앙상했던 가지마다 투명한 물이 오르고, 그 끝에 맺힌 작은 망울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우주를 품어내는 계절입니다.
서두르는 기색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옆 나무가 먼저 잎을 틔운다고 해서 조급해하지도, 아직 닫혀 있는 봉오리를 비관하지도 않고,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정직한 광합성의 시간만큼만 피어날 뿐입니다.
오늘 하루만큼은 세상의 속도계에서 눈을 떼고, 내 안의 심박수에 귀를 기울여 보고 싶어집니다.
춘분은 단순히 계절의 분기점이 아니라, 무너졌던 나의 중심을 다시 세우라는 고요한 선언인듯요.
삶의 입체감은 결국 슬픔의 깊이와 기쁨의 높이가 만나는 지점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이 완벽한 낮과 밤의 대칭 속에서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흐르는 시간을 잠시 세워두고, 이 너른 우주 속에 오롯이 존재하는 한 점으로서의 나를 바라봅니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봄은 충만하고, 내가 나를 온전히 긍정할 때 비로소 내 안의 풍경도 제 고유한 색채를 발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낮과 밤이 손을 잡는 이 짧고도 고귀한 찰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선명해진 마음으로 다시 삶에게 말을 겁니다. 봄은 기다리는 자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서 차오르고 있었음을
어둠을 견딘 만큼 빛은 더 투명해집니다.
경계 위에 서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당신.
숨결이 닿는 곳마다 이미 봄이 머뭅니다.
비로소, 나를 사랑하기 참 좋은 날.
겨울의 외투를 벗듯, 마음의 묵은 짐들을 내려보아요.
낮의 명랑함과 밤의 평온함이 기분 좋게 공존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궤도 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평을 찾아가는 중이니까요.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덜 흔들린다."
by 《그 자리에 핀 마음》 ⓒbiroso나.
비로소 어둠과 빛이 서로의 영역을 온전히 내어주며 악수하는 지금, 나는 내 안의 가장 깊은 곳부터 투명한 볕을 들이기로 했다.
보이지 않아도, 마음은 그렇게 피어나고 있었다.
#봄의감각 #춘분에세이 #회복의시 #마음의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