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다 먼저 마음에 닿는 것들에 대하여
빛을 품은 손끝,
하린이의 가장 따뜻한 봄
“하린아, 이것 봐!
아니, 이거 좀 느껴봐.”
민우의 숨이 조금 가쁜 채로 다가왔다.
잡힌 손이 따뜻했다.
그 온기가 먼저 봄을 데려왔다.
하린이는 말없이 손을 맡겼다.
민우가 멈춰 선 자리에서,
그녀의 손끝에 아주 작은 떨림이 내려앉았다.
“지금 네 손끝에 닿은 건 노란 개나리야.”
손끝에 스친 것은,
바람보다 가볍고
햇살보다 먼저 부서지는 감촉이었다.
하린이는 꽃잎을 조심스럽게 쓸어보았다.
아기 새의 숨결처럼 부드러운 결이
손가락을 타고 천천히 올라왔다.
보이지 않는데도
환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건 아마
빛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열리는 순간일 것이다.
“민우야, 이 꽃… 웃고 있는 것 같아.”
민우가 웃었다.
“맞아. 너처럼.”
하린이는 꽃 가까이 얼굴을 가져갔다.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아주 연하고
맑고
싱그러운 향기.
“물방울이 톡 하고 터지는 냄새야.”
그 말에 민우는 잠시 말을 잃었다.
보는 것보다 더 생생한 말이었다.
하린이의 머릿속에는
이미 하나의 봄이 펼쳐지고 있었다.
색이 아니라
온도와 향기로 그려지는 풍경.
보이지 않는 봄이
누구보다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 더 가볼까?”
민우가 손을 조금 더 꼭 잡았다.
두 아이는 언덕을 천천히 올랐다.
발밑의 흙은 겨우내 얼어 있던 시간을 풀어내듯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사각, 사락.
마른 풀잎들이 발걸음마다 작은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누군가 길을 열어주는 소리처럼 들렸다.
언덕 위에 닿자
바람이 먼저 달려왔다.
하린이는 두 팔을 벌렸다.
바람이 몸을 스쳐 지나갔다.
아니, 지나간 것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 간 것 같았다.
“들려, 민우야?”
“뭐가?”
“나무들이 깨어나는 소리.”
잠들어 있던 가지들이
조금씩 몸을 펴며 내는 숨결.
보이지 않는 것들이
세상에서 가장 또렷하게 들리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하린이는 가볍게 떠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자신이 바람이 된 것처럼.
아이들은 시냇가에 멈춰 섰다.
졸졸,
조잘조잘
물이 흐르는 소리가
낮은 웃음처럼 번져 나왔다.
“이 소리… 꼭 아이들 웃음 소리 같아.”
하린이는 조심스럽게 손을 물에 담갔다.
차갑고,
맑고,
투명한 감촉.
손가락 사이로 물이 빠져나갔다.
붙잡을 수 없는데
이상하게 놓치고 싶지 않은 느낌.
“시냇물은 보이지 않는 나에게도
똑같이 내 손을 적셔주는구나.”
그 말은 조용했지만
아주 깊었다.
“햇살도, 바람도, 물도…
다 똑같이 나를 안아주네.”
민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옆에 앉아 있었다.
그 곁이
말보다 더 다정했다.
그때였다.
웅웅,
윙—
공기가 아주 작게 떨렸다.
“가만히 있어 봐.”
민우가 속삭였다.
“네 앞에… 벌이 있어.”
하린이는 숨을 멈췄다.
아주 작은 날갯짓이
공기 속에서 빛처럼 번졌다.
보이지 않는데도
느껴지는 생명의 떨림.
그건
빛보다 더 또렷했다.
두 아이는 느티나무 아래 벤치에 앉았다.
햇살이 가지 사이로 내려와
조용히 어깨 위에 얹혔다.
따뜻함은
언제나 설명보다 먼저 닿는다.
“민우야.”
“응.”
“봄은 참 공평하다.”
잠시의 침묵.
“내가 보지 못해도
이렇게 다가와 주잖아.”
온기,
향기,
소리.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
민우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하린아, 햇살은 원래 그래.”
“어떻게?"
“누구한테나 똑같이 비추거든.”
하린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민우의 손을 더 꽉 잡았다.
“이제 알 것 같아.”
“뭐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거라는 걸.”
그날의 봄은
누구에게나 같았지만
누군가에게는
조금 더 깊게 남았다.
보이지 않아도
가장 환하게.
세상에서 가장 환한 빛은 눈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알아본다.
[앞이 보이지 않는 하린이와 다정한 민우가 함께 써 내려간 눈부시고 따스한 봄날의 마음 스케치]
< 봄의 기적 >
굳게 닫힌 눈꺼풀 너머로
노란 온기가 노크를 합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세상이 멈춘 것은 아니기에
바람은 내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고
시냇물은 손끝에 맑은 웃음을 내어 줍니다.
사랑하는 마음에는 장벽이 없고
스며드는 봄에는 차별이 없어서
우리는 같은 온도 속에 숨을 쉽니다.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내 곁에 머무는 당신의 숨결이
가장 눈부신 봄의 증거라는 것을.
마음이 아픈 당신에게 봄이 속삭입니다.
상처 입은 자리마다 향기가 고일 것이라고,
부딪혀 깨진 마음의 파편들이
시냇물의 노래가 되어 흐를 것이라고.
눈을 감고
심장이 내는 정직한 울림에 귀 기울여 보세요.
당신은 이미 누군가에게는
가장 따스한 봄의 증거이자,
만질 수 있는 기적입니다.
눈을 감을 때 비로소 더 또렷해지는 것들이 있다. 향기처럼 스며들고, 온기처럼 남고, 한 사람의 손처럼 오래 머무는 것들.
그 모든 것은 눈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알아본다. 그래서 어떤 봄은, 보이지 않아도 더 선명하다.
이 이야기를 쓰며
한 아이를 오래 떠올렸습니다.
세상을 조금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아이
말보다 눈빛이 먼저 닿고,
표현보다 기다림이 더 익숙한 아이.
‘보이는 것’보다,
‘느끼는 것’으로 먼저 세상을 만나고 있는 아이.
손끝으로,
온기로, 마음으로.
문득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충분히 보고 있으면서도,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그 아이의 곁에도
말없이 손을 내밀어 주는
누군가가 있기를 바라봅니다.
오늘도 장애가 있는 큰 딸에게서
세상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닿는 것들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들에 대해.
마음의 페이지를 넘기면, 당신의 계절이 들려옵니다.
하린이의 손끝은 봄의 온도를 기억합니다.
민우의 목소리는 흐르는 물의 무늬를 닮았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세상은 온통 눈부신 기적들로 가득합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빛을 품은 존재들입니다.
《마음으로 그리는 눈부신 세상》
by 숨결로 쓴다 ⓒbiroso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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