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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낙엽들의 마지막 용기>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나를 지켜준 것들에 대하여

by 숨결biroso나




깊은 가을날, 공원 구석에는 노랑이와 친구들이 잔뜩 쌓여 있었어요. 노랑이는 한때 단풍나무에서 가장 크고 용감했던 잎이었지만 이제는 낙엽이 되어 떨어진 신세라 힘없이 구석에서 속삭였죠.


"우리는 이제 쓸모가 없나 봐. 모두 버려졌어."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였어요. 찬 바람이 불어오면, 노랑 낙엽들은 쓸쓸히 서로에게 기대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죠. 노랑이와 친구들은 모두 다가오는 겨울을 두려워했어요.





그때, 저 멀리서 발랄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어요.


"깡총! 깡총!"

소리의 주인공은 은채였어요. 은채는 학교 수업을 끝내고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죠.



은채가 막 모퉁이를 돌았을 때였어요. 햇볕이 잘 들지 않아 살짝 축축하고 미끄러운 돌길이 나타났죠. 그 길 한가운데에는 빗물이 고여 번들거리는 위험한 웅덩이가 있었어요.





은채는 신이 난 나머지 발밑을 보지 못했어요. 미끄러운 곳을 향해 위험하게 달려오고 있었죠. 노랑이는 깜짝 놀라 외쳤어요.



"안 돼! 거기서 미끄러지면 큰일 날 거야!"



노랑이는 이젠 버려진 신세라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자신들의 모습을 떠올렸지만, 동시에 작은 은채를 지켜야 한다는 뜨거운 마음이 솟아올랐어요.


노랑이는 친구들에게 온 힘을 다해 소리쳤어요.



"우리가 힘을 합치면 카펫이 될 수 있어! "


"미끄러운 곳을 우리가 덮어주면 은채를

지켜줄 수 있을 거야!"





수많은 낙엽 친구들이 노랑이의 목소리에 깨어났어요. 수십 개의 작은 잎들이 바람이 부는 것처럼 빠르게, 미끄러운 바닥을 향해 굴러가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서로 뭉쳐 엮인 채 함께 힘을 모았어요.





그러자 낙엽들은 은채의 발이 닿을 바로 그 미끄러운 웅덩이 위에 푹신하고 두터운 용기의 카펫이 되어 깔렸어요.

노랑이도 맨 앞에 도착해 마지막 힘으로 자리를 잡았죠.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카펫이 완성된 순간, 은채의 작은 발이 그 위를 밟고 지나가기 시작했죠.





"어? 이게 뭐지?"



은채는 갑자기 발밑에서 느껴지는 푹신하고 바스락거리는 느낌에 걸음을 멈췄습니다. 위험하게 미끄러질 뻔했던 작은 몸이 신기하게도 안전하게 균형을 되찾았지요.





은채는 노랑 낙엽들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어요.



" 고마워. 노란 낙엽 친구들아 "


노랑이와 친구들은 마지막 임무를 완수한 기쁨에 환하게 미소 지었어요. 노랑 낙엽들의 용감한 카펫 덕분에 은채는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답니다.






노랑이와 노랑이 친구들은 따뜻한 햇살을 받는 것처럼 기뻤어요. 이제는 버려져 쓸모없어진 줄 알았던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용감하고 따뜻한 용기를 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그제야 살포시 몸을 눕히며 가을의 마지막 숨을 후우 내쉬었어요. 그들은 사라졌지만, 누군가를 지켜낸 용기는 작은 별처럼 오래 빛났답니다.




누군가는 사소한 존재라 말할지라도
어떤 마음은 마지막까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지켜내며 빛나기도 한다.


그리하여 가장 연약한 것들이
가장 멀리 날아오르는 순간이 있다










우리는 어떤 날엔 누군가를 조용히 받쳐주는 낙엽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엔 그 위를 살며시 밟고 지나가는 사람이 되기도 하지요.


그 둘 사이의 온기가 세상을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들어 주기를 이 글을 쓰며 바라봅니다.




by 숨결로 쓴다 ⓒbiroso나.




#가을이야기 #작은용기 #낙엽 #창작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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