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의 빛 아래서, 늦게 도착하는 마음에 대하여
타인의 정원을 지나,
나의 계절로 돌아오는 길
남의 꽃을 오래 바라보던 손이
처음으로
내 흙을 만졌다.
그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쩌면
가장 많은 것이 시작된 날이었다.
타인의 정원을 기웃거리던 시간.
손가락 끝으로 화면을 밀어 올리자
빛이 먼저 번지고
그다음에야 사람들의 얼굴이 따라왔다.
어느 장면은 너무 환해서
눈을 조금 찡그려야 했고
어느 장면은
나의 하루보다 훨씬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 사이를 조용히 지나가며
아직 도착하지 않은 나의 계절을
남의 풍경 속에서 먼저 만나고 있었다.
누군가는 문을 닫고 나갔고
누군가는 더 넓은 방으로 옮겨갔다.
그 모든 장면에
축하의 말은 쉽게 얹을 수 있었지만
손을 떼고 난 뒤에도
한동안 화면 속 밝기가
내 마음에서 꺼지지 않았다.
창문을 열어두었는데도
방 안의 공기는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켜져 있지도 않은 화면을 바라보듯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그때 알았다
부러운 건
그들의 결과가 아니라
그들이 이미
자신의 계절 안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는 걸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처럼
손잡이를 잡고도 들어가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었다.
준비가 덜 된 것도 아니었고
용기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나의 시간이
조금 늦게 도착하고 있을 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계절은 한 번에 오지 않는다.
먼저 빛이 바뀌고
그다음에 공기가 달라지고
마지막에야
우리는 그것을 ‘봄’이라고 부른다.
내 안에서도
이미 무언가는 바뀌고 있었을지 모른다
아직 이름 붙이지 못했을 뿐.
누군가의 계절이 눈부실수록
더 또렷하게 알게 된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도
아직 다 오지 않은 것들이
조용히 쌓이고 있다는 것을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타인의 정원에서 피어나는 꽃을 보며
내 씨앗을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시간은
비교하는 순간 흐려지고
기다리는 순간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제
조금 늦게 도착하는 나를
그대로 두기로 한다.
아직 피지 않은 것들을
섣불리 계절 밖으로 밀어내지 않기로 한다
내가 걷는 속도로도
분명히 도착하는 계절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믿어보려 한다.
타인의 계절을 먼저 만나는 순간에도, 나의 시간은 지워지지 않고 다른 속도로 흐르고 있다.
곁눈질의 계절을 지나,
나라는 궤도로 회항하는 법
우리는 습관적으로 타인의 정원을 기웃거리며 살고 있다.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밀어 올리는 화면 속에는 내가 가지지 못한 계절들이 만개해 있다.
누군가의 퇴사는 해방의 축포처럼 터지고, 누군가의 성취는 정갈하게 차려진 성찬처럼 눈부시다. 그 풍경 앞에서 축하의 문장을 적어 내려가지만, 마침표를 찍는 손가락 끝엔 서늘한 그늘이 진다.
상대가 미워서가 아니다. 그가 지닌 존재의 충만함이 거울이 되어 나의 빈자리를 너무도 투명하게 비추기 때문이다. 종종 내가 원하는 것이 고유한 취향이라 믿지만, 실은 타인이 가치 있다고 이름 붙인 것들을 곁눈질하며 그 열망을 흉내 낸다.
남의 뜨락에서 몰래 꺾어온 꽃들을 가슴에 심어 보지만, 뿌리 잃은 향기는 금세 흩어지고 마른 가지 끝엔 갈증만 차오른다.
질투가 유독 날카로운 손톱을 세우는 곳은 늘 가까운 거리다. 우주 너머의 부호에겐 무덤덤하면서도, 어제까지 같은 출발선에 서 있던 동료의 성취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저 자리가 내 자리일 수도 있었는데,
라는 억울함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 우리는 남의 문장을 베껴 쓰느라 정작 내 생의 첫 문장을 잊어버리고 만다. 타인의 속도에 맞추어 페달을 밟다 보면, 가려던 목적지는 안갯속으로 사라지고 앙상하게 마른 허기만 남는다.
이 소란스러운 감정을 부끄러운 얼룩으로만 둘 일은 아니다. 질투는 내 마음의 해안선이 어느 쪽으로 무너지는지 가리키는 가장 시리고도 투명한 등대다.
누군가가 부러워 견딜 수 없는 날에는 그 화려한 겉모습 밑바닥까지 치열하게 파고들어 보아야 한다. 내가 진정으로 갈구하는 것이 그의 성공이라는 결과물인지, 아니면 그 과정에서 얻었을 삶의 주도권인지를 조용히 물어야 한다.
타인의 손때 묻은 정답지를 덮고,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나만의 눈길 위로 궤적을 새기는 일. 요란한 박수 소리가 닿지 않는 곳에서, 오직 나에게만 선명한 작은 기쁨들을 발굴하는 것. 비 온 뒤의 흙냄새에 귀를 기울이거나, 정성껏 내린 커피 한 잔의 온기에 집중하는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비로소 나라는 존재는 단단해진다.
타인의 계절이 꽃피는 소리에 마음이 흔들리더라도 자책하지 말자. 삐뚤삐뚤하더라도 나만의 언어로 써 내려가는 삶의 다음 챕터는 그 누구의 화려한 문장보다 생동감 있게 빛날 것이기에.
이제 그만 곁눈질을 멈추고, 나만의 내면이 가리키는 진짜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갈 시간이다.
타인의 정원을 기웃거리느라
야윈 당신의 아침에게
그의 정원에 꽃이 피었다는 소식에
내 안의 동굴에선 텅 빈 소리가 났다.
축하한다는 문장을 적어 내려가던 손가락 끝에
마침표 대신 서늘한 그늘이 맺히고
베껴 쓴 욕망들은 뿌리 없이 흩어진다.
나는 이제
남의 뜨락을 기웃거리느라 야위어버린
'나'라는 문장을 다시 쓰기로 했다.
타인의 성공이 해방의 축포처럼 터지던 날, 마음의 바닥에선 텅 빈 소리가 나곤 합니다. 그 소리는 상대에 대한 미움이 아니라, 내 안에 깊숙이 자리 잡은 결핍의 연주입니다.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남의 정원이 아닌 '나'라는 존재의 중심으로 천천히 노를 저어보아요.
글벗님의 오늘도 타인의 빛에 눈먼 곁눈질이 아닌, 당신만의 온기로 채워지길 바랍니다.
우리는 종종 남의 풍경을 통해 자기 시간을 재려 합니다. 하지만 시간은 비교로 측정되지 않겠지요
각자의 온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천천히 완성될 뿐입니다. 우리의 시간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아직 도착 중이니까요.
텅 빈 동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은 아프지만 정직합니다. 남의 정원에서 꺾어온 시든 꽃들을 치우고, 비로소 내 마당의 흙을 만져봅니다.
그곳에 나만의 숨결을 심을 때, 질투는 더 이상 시기가 아닌 나를 빚어내는 가장 다정한 흙이 됩니다.
남의 꽃을 오래 바라보던 손이
처음으로 내 흙을 만졌다.
그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쩌면, 가장 많은 것이 시작된 날이었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계절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들이 빠르게 피어나는 동안
나는 다르게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정원은 아직 조용하고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이곳에는 분명히
내가 손을 댄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나는 오늘도
조금 느린 속도로 내 자리를 돌본다.
빠르게 자라는 것들은 쉽게 보인다
하지만. 천천히 자라는 것들은
오래 바라본 사람에게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타인의 정원을 기웃거리느라 야윈 마음을 안아 봅니다. 이제는 타인의 속도가 아닌 나만의 숨결로 걸어가세요. 우리가 머무는 지금 이 자리가 가장 눈부신 시작점입니다.
타인의 불꽃을 부러워하다 나의 등불을 꺼뜨리지 않기를.
질투가 할퀴고 간 자리에 나만의 꽃씨를 심어보기를.
남의 인생을 베껴 쓴 문장은 결코 나의 가슴을 울리지 못하기에 오직 나만의 숨결로 적어 내려갈 내일의 첫 문장을 기다립니다.
이곳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입니다.
완벽한 하루가 아니어도, 아무 성취 없이 지나간 날이어도 괜찮습니다. 그저 오늘의 흔들림이 지금, 다시 빚는 시작이 될 수 있기를요.
《지금, 나를 빚는 시간》
by 숨결로 쓰는 biroso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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