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무너지며,나를 다시 정의한다
화가 난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니었다.
몸 어딘가가 묵직하게 가라앉고,
말을 꺼내기 전부터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지던 날들.
그런 날엔
눈물이 나지도 않고,
누구에게도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나라는 사람이 투명하게 사라져 가는 느낌.
그건 감정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감정을 인식하던 ‘나’라는 주체가
조용히 희미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감정이 사라졌다고 느낀 건
정확히 말하면,
감정을 알아차리던 나의 감각이 꺼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늘 괜찮은 척을 잘했다.
웃을 수 있었고,
감정을 다룰 줄 아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너는 늘 단단해 보여.”
“그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넘길 줄 알았어.”
그 말들이 나를 버티게 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 무너짐을 스스로 부정하게 만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것’처럼 대했다.
흘러넘치지 않도록 조절하고,
들키지 않도록 숨기고.
그러다 보니
감정이 나를 지나가도,
나는 그것을 감정이라 부르지 못했다.
무너졌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 단단한 척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버티지 않아도 되는 공간.
그 자리에서
비로소 감정들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슬픔은 울지 않고도 존재할 수 있었고,
외로움은 설명이 없어도 내 안에 있었다.
감정을 감춘 게 아니라,
감정이 말할 기회를 잃고 있었던 것이다.
무너짐은
그 침묵의 틈을 다시 열어주는 순간이었다.
무너지는 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나를 회복하는 다른 방식이었다.
나는 더 이상
‘단단한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붙잡고 싶지 않다.
지금의 나는
무너짐을 겪고서야
비로소 나의 결을 알게 되었다.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한 것이 아니라,
느껴도 된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던 나보다,
무너진 후 나를 다시 바라보게 된 지금의 내가
훨씬 더 나답다.
그 감정을 마주한 나로 다시 살아가기로 했다."
by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 biroso나.
(다음 화 예고) 3화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모양을 바꿀 뿐>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감정의 틀을 벗어난 존재의 여백을 바라보며, 그 자리를 채우는 사유의 방식을 기록한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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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 《엄마의 숨》
2) 화/ 토 《78개의 마음》
3) 수/ 금 《다시, 삶에게 말을 건넨다》
4) 수 / 토 《마음에도, 쉼표를 찍는다》
5) 목 《별을 지우는 아이》
6) 목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7) 금 《아무 것도 아닌 오늘은 없다》
8) 일 《말없는 안부》
9) 일/ 월 《가만히 피어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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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경계 #무너짐의기술 #감정해체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