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넘기는 마음〉

5화 넘겨진 페이지마다 또 다른 내가 있다

by 숨결biroso나

“넘겨진 책장은 잊히지 않고,

마음속에 또 다른 문장을 남긴다.”


삶을 살아보니, 책 속 문장과 마음은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펼치면,

아직 읽지 않은 페이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앞장에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

그 장을 어떤 마음으로 덮었는지에 따라 다음 문장은 전혀 다른 빛으로 다가온다.


인생도 그렇다.
이미 지나온 장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그 기억이 다음 장의 색을 결정한다.

어린 시절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쳐보면 같은 문장인데도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그때는 무심히 지나쳤던 구절이, 지금은 눈시울을 적시거나 마음을 다독인다.


삶의 경험이 문장을 다시 쓰고, 그렇게 우리는 늘 새 독자가 되어 같은 책을 새롭게 읽는다.

인생도 반복해 다가오는 순간마다 다른 의미를 품는다.

어떤 페이지는 웃음으로 채워지고, 어떤 페이지는 눈물로 얼룩진다. 어떤 장은 술술 넘어가지만, 어떤 장은 쉽게 넘기지 못한다.
책을 덮고 싶을 만큼 괴로운 대목이 있고,
인생에도 마주하기 버거운 시간이 있다.

하지만 책이든 인생이든, 페이지를 넘기지 않으면 이야기는 멈춘다.
우리가 같은 페이지 위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에도,
시간은 묵묵히 다음 장을 준비하고 있다.
계절은 변하고, 사람은 떠나고, 하루는 저물어 간다.


결국 손끝을 떼어내어 페이지를 넘겨야 한다.
비록 준비가 덜 되었다 해도, 이야기는 앞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길 때, 손끝은 종종 머뭇거린다.
얇은 종이의 결이 전해지고,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공기를 가른다.
그 잠깐의 공백은 긴 침묵처럼 길게 느껴진다.
다음 장에 무엇이 기다릴지 몰라, 나는 한동안 같은 페이지에 머물러 있다.


삶도 그렇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할 때, 낯선 길에 들어서려 할 때, 머뭇거리며 같은 자리에 멈춘다.
넘기면 달라질 것을 알면서도 차마 넘기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가장 망설였던 페이지에
내 인생의 중요한 문장이 숨어 있었다.


실패라 불렀던 사건이 내 삶의 굵은 밑줄이 되었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시간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문장이 되었다.
넘기지 않았다면 결코 만날 수 없었을 문장들이었다.

책장은 넘기며 문장을 새겨본다.
넘겨진 페이지마다 나의 과거가 남고,
열린 페이지마다 새로운 내가 피어난다.
지금의 문장은 언젠가 또 다른 나에게 다른 의미로 읽힐 것이다.

나는 오늘도 책을 읽듯 내 삶을 읽는다.
손끝은 여전히 망설이지만, 결국 다음 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믿는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내 이야기는 하나의 책으로 완성되어 있을 거라는 것을.
그리고 그 책은, 누군가의 인생 속에서 또 하나의 문장이 될 것이다.



머뭇거림 끝에 넘긴 페이지가,

가장 깊은 문장이 된다.


"오늘의 문장은

내일의 내가 읽어낼 또 다른 문장이 된다."

by 숨결로 쓴다 ⓒbiroso나.


다음 화 예고
6화 〈나무가 들려준 말〉

뿌리와 가지의 오래된 가르침

〈머물던 자리, 흘러간 빛〉은 멈춘 듯한 하루에도 스쳐간 빛을 당신 마음에도 건네는 이야기입니다.


#삶의기록 #마음의책장 #성장의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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