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감정 표현이 없다고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고통은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눈물도, 분노도, 하소연도 없이 스며드는 고통이 있다.
그저 조용히, 묵직하게, 내 안에서 부유하는 감정.
나는 한때,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렇지 않은 사람으로 여겨졌다.
회복이 빠르다거나, 멘탈이 강하다는 말들이 칭찬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것은 내 안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들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감정을 ‘드러나는 것’으로만 간주한다.
눈물이 있어야 슬픔이고, 화를 내야 분노이며,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야 힘들다고 믿는다.
그러나 감정은, 늘 그렇게 표면으로 올라오는 게 아니다.
어떤 감정은 수면 아래에서 수십 겹의 무늬로 흔들린다.
감정은 꼭 ‘보여져야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침묵도 하나의 감정 언어다.
울지 않는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게 아니다.
내가 울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울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것 같아서.
감정이라는 것은, 어느 순간까지는 눌러 둘 수 있지만 그 임계점을 넘어서면 말보다 먼저 몸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나는 그 문턱 앞에서 수없이 발길을 돌렸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써 견디는 방식이었다.
감정은 각자에게 허락된 리듬이 있다.
누군가는 터져 나오는 감정으로,
누군가는 눌러 담은 고요로
자신의 아픔을 살아낸다.
누군가는 운다. 누군가는 침묵한다.
누군가는 웃으며 넘기고,
누군가는 오래도록 말하지 않는다.
그 모든 방식이 다 감정이다.
울지 않는 사람,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웃고 있는 사람,
화제를 돌리는 사람.
그들은 모두 ‘괜찮지 않음’을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그들을 오해하지 않아야 한다.
그 침묵 속에 감정이 고여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감정은 드러내지 않아도 있다.
말하지 않는다고, 울지 않는다고,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어쩌면 누구보다도
자신의 감정을 견디고, 다독이고,
혼자서 싸워내는 중일지도 모른다.
말보다 오래 남는 감정이 있다는 것,
그 조용한 진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러분은,
울지 않았던 날들 속에 꺼내지 못한 마음 하나쯤은,
지금도 남아 있지 않나요?
말보다 먼저 반응하고, 말보다 나중까지 남는 감정이 있다.
그 감정은 지금도, 울지 않는 당신 안에 조용히 머물고 있다.
by《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biroso나.
(다음 화 예고)
5화. 감정은 반응이 아니라 구조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표현되지 않아도 존재 하는 감정들의 자리를 그 침묵과 오해의 경계에서 다시 써 내려갑니다.
#존재의경계 #무너짐의기술 #감정해체에세이 #말없는감정 #침묵의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