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스친 자리〉

8화 떠남이 남기는 고요

by 숨결biroso나

“바람은 머물지 않는다."


인생도 그렇다.
머물 수 없기에, 그 순간이 더 깊이 남는다.



바람은 머물지 않는다. 잡을 수 없고, 붙들 수도 없다. 그러나 스쳐간 자리마다 남는 것이 있다.

풀잎이 기울고, 우리의 마음도 잔잔히 흔들린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흔적, 그것이 바람의 얼굴이다.

살다 보면 우리는 수많은 바람을 맞는다. 어떤 바람은 따뜻한 햇살을 싣고 와서 우리를 감싸고, 어떤 바람은 싸늘한 그늘을 몰고 와서 마음을 저리게 만든다.

때로는 준비되지 않은 순간에 불어와 삶을 뒤흔들기도 한다.


그리고 바람은 언젠가 떠난다. 떠난 자리에는 고요가 찾아오고, 그 고요 속에서 우리는 스쳐간 바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람도 바람과 닮아 있다. 가까이 있을 땐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하지만, 떠난 뒤에야 그 자리를 알게 된다.


사소한 말투, 웃음소리, 함께 걷던 발걸음이 바람결처럼 남아 우리의 일상 곳곳을 흔든다. 스쳐간 줄 알았던 순간들이 오히려 오래도록 잔상처럼 머무는 것이다.

바람은 떠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흘러가면서 더 넓은 곳을 향한다. 들판을 건너고, 산을 지나며, 창문 틈새로 스며든다.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기에, 더 많은 곳을 만질 수 있다. 떠남은 곧 사라짐이 아니라, 또 다른 닿음이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관계가 흩어지고, 시간이 멀어져도 그것은 끝이 아니라 다른 시작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바람은 알려준다.

차가운 바람은 때로 고통스럽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차가움조차도 우리에게 의미가 된다.

닫혀 있던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고, 막혀 있던 길에 새로운 통로를 열어준다.


낯선 불편함은 결국 우리를 변화시키고, 다른 풍경을 마주하도록 이끈다. 자유란 그렇게 불편을 통과해야 얻을 수 있는 선물인지도 모른다.

떠난 바람이 남긴 자리는 텅 빈 듯 보이지만, 사실은 여백이다. 그 여백 위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치 바람이 나무의 낡은 잎을 떨어뜨린 뒤, 다시 싹이 돋을 자리를 내어주는 것처럼.


우리는 떠남을 상실로만 바라보지만, 바람은 그것이 곧이어진다는 것을 조용히 일러준다.




삶은 어쩌면 한 줄기 바람처럼 흐른다. 머물다 떠나고, 흔들다 고요해지며, 남긴 흔적 속에서 다시 의미가 싹튼다.


그래서 바람은 자유다. 잡히지 않음으로써, 머무르지 않음으로써, 그 존재가 더욱 깊이 새겨진다.


오늘도 바람은 스쳐간다. 떠났으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스쳐갔기에 남은 것이다.

고요 속에 남은 흔적은 우리의 마음을 넓히고, 다시 새로운 계절을 열어간다.

바람은 잡히지 않음으로써 오래 남는다.

떠남은 사라짐이 아니라, 또 다른 닿음이다.



"바람은 잡을 수 없지만, 스친 자리마다 남겨진 고요가 우리를 오래 머물게 한다."


by 숨결로 쓴다 ⓒbiroso나.



(다음 화 예고)
9화 〈바위의 무게〉

흔들리지 않는 것의 힘

《머물던 자리, 흘러간 빛》은 멈춘 듯한 하루에도 스쳐간 빛을 당신 마음에도 건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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