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생일이 뭐라고

by 고사리

원하지 않아도 꼭 돌아오는 그날.

1년에 한 번 있는 그날.

나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내 생일이 싫었다.


다정하지도, 무심하지도 않았던 부모님은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맞벌이를 해서였을까.

지금까지도 딱히 엄마, 아빠가 챙겨주는 생일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때 그 시절에 흔했던 생일파티 한 번을 못해봤다.


늘 친구 생일파티만 쫓아다니는 손님이었을 뿐.

아직도 생생하다.

생일인 친구집에 가면 왁자지껄한 분위기와 그 친구의 엄마가 차려주는 풍족한 생일상과, 친구들이 사 온 선물을 받으며 행복해하는 친구의 모습.


그때부터 생일에는 조금 특별한 날이 되고 싶은 결핍 같은 게 생겨버렸다.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달라질 줄 알았던 생일은 마치 저주에 걸린 것 마냥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

친구들끼리 돌아가면서 선물을 해주다가 꼭 내 생일이 돌아올 시점에 분란이 일어난다던가,

친구들끼리 내 생일로 인해 의견충돌이 나서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던가.


매년 생일마다 그런 일이 생겼던 건 아니지만 가끔씩 타이밍 좋게(?) 나의 생일이 망쳐지는 해가 되면 괜히 상처가 더 컸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정말 내 생일 신경 쓰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또 왜 이렇게 남 생일은 잘 챙겼는지.

내가 100을 주면 늘 돌아오는 건 10.


점점 생일에 대한 결핍이 쌓이고 쌓이면서 나에게 생일은 무의미해진 걸 넘어서 생일이 있는 달을 싫어하기까지 했다.

하필 우울증을 앓고 있던 나에게 1년 중 더욱더 우울한 달이 되어버렸다.


태어난 걸 축하받아야 하는 날이 누군가에겐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우울해지는 힘든 날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그날은 마치 건강검진처럼 나의 1년을 평가받는 기분이었다.




어느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축하를 받는다는 건 인간관계와 직결되는 걸까?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채워지지 못한 결핍뿐만 아니라 나의 '기대' 때문이 아니었을까.


누군가가 축하해 주면 고맙고, 아니면 아닌 대로 내가 특별한 날로 만들면 되는 거였다.

남들의 시선과 기분이 늘 중요한 나는 생일날 까지도 남들의 눈치를 본 것이다.

내 결핍을 남들이 채워주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늘 채워지지 않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인생은 '남'이 아닌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내 기분은 '남'이 아닌 '내가' 결정한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그깟 생일이 뭐라고.

왜 나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었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공황장애, 그거 연예인병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