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저녁, 고요하게 티비를 보다가 생긴 일이다.
갑자기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호흡이 제대로 안되고 심장이 엄청난 속도로 빨리 뛰기 시작했다.
손발까지 저려오고 온몸이 굳는 느낌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공포스러운 느낌.
그때의 나는 죽음에 대해서 갈망까지 하며 부정적이고 암울한 시기였다.
‘그렇게 죽고 싶어 하더니 이제 진짜 죽는구나’
정말 그날의 느낌과 감정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아니 정말로 죽기 직전까지도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것이다.
옆에는 남편이 있었지만 입 밖으로 말조차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나는 직접 손을 벌벌 떨며 119를 눌렀다.
그렇게 죽음에 대해 갈망하던 내가 살고 싶어서 구급차를 부르다니,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모순적인 상황인가.
119에 전화 연결이 되었고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내가 느끼는 증상을 겨우겨우 얘기했다.
"숨이... 안 쉬어져요. 죽을 거 같아요. 제발... 빨리 좀 와주세요!"
이대로라면 구급차가 오기도 전에 죽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쯤이었다.
마치 괜찮아지는 약을 먹은 듯이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은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처음 느낀 무서운 감정 때문인지 숨을 못 쉰다던가, 손발이 저린다던가 등의 신체적 증상은 나아지긴 했지만 죽을 것 같은 감정의 공포는 여전했다.
구급차가 도착하고 엠뷸런스에 누워있으니 안도감 때문인지 공포감도 서서히 잠잠해졌다.
그렇게 도착한 응급실에서는 마치 나이롱환자가 억울함을 해명이라도 하듯 스쳐 지나갔던 증상을 열심히 설명했고, 나의 증상을 들은 의료진은 온갖 검사를 진행했다.
긴 기다림 끝에 결과가 나왔지만 응급실 선생님은 지금 당장 큰 이상은 없지만 선천성심장질환이 있던지라 혹시 모르니 외래를 잡으라는 말만 남기고 응급실 비용 30만 원을 내고 허무하게 퇴원했다.
다니고 있던 대학병원 외래진료를 잡아놓긴 했지만 워낙 대기가 길었고 그 사이에 나는 몇 번이나 같은 증상으로 응급실에 가는 수순이 반복되었다.
당연히 검사결과는 이상 없음.
응급실에서도 정확한 원인을 모르고 매번 힘든 검사와 비싼 병원비만 나가게 되니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조금 답답한 마음에 다니던 병원 외래 날짜를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최대한 빨리 외래를 볼 수 있는 대학병원을 찾아갔다.
나는 교수님을 마주하자마자 그동안의 답답함과 궁금증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응급실 내원기록과 검사 결과지를 한참 들여다본 교수님은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다가 요즘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냐는 마지막 질문을 끝으로 조심스레 정신과 진료를 권했다.
네? 심장질환이 아니라고요?
그때서야 처음으로 그 단어를 접했다. 공황장애.
아차 싶었다.
심장 기저질환이 있는지라 그쪽으로만 생각했다.
모든 원인이 심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진료실을 나오고 나는 더 복잡해졌다.
그때 당시에는 각종 미디어를 통해 공황장애라는 단어를 자주 접했고 소위 연예인 병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솔직히 처음엔 바람 잔뜩 들어간 사람처럼 허세 같은 병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에 얘기하기 창피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내가 선택한 방법은 공황을 참아냈다.
참으면 안 되는 병을 억지로 참아냈다.
하지만 더 독해졌다.
어느 날부터 그 공황이라는 증상이 심해지고 아이랑 집 앞 놀이터 나가는 것조차 두렵고 힘들었다.
더 나아가 잠드는 게 두려웠고 사람들이 무서워지고 불안해졌다.
참아낸다고 해서 참아지는 게 아니었다.
마치 참아낸다고 낫지도 않는 감기를 참아 낸 후 더 독해지고 오래가듯 마음의 병도 마찬가지었다.
내가 강인해지고 싶다고 해서 넘어가는 병이 아니었다.
공황은 처음엔 의식 있는 상태에서 나타나다가 나중에는 그 증상이 잠결에, 무의식에 두드러졌다.
이 또한 처음엔 악몽을 꾸나 했다.
잠든 상태에서 공황이 온다는 건 꿈에도 예상 못했으니까.
안 그래도 우울증 때문에 불면증이 생긴 상태였는데 겨우 잠들었다가 질식하는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깨기도 했고 사람 많은 곳에서 증상이 나타날 때면 집중을 못하고 뛰쳐나가고 싶었다.
나에게 공황이 있다는 걸 자각하게 된 후
대부분의 사람이 잠드는 밤은 나에겐 지옥이었다.
잘 자는 날보다 잘 못 자는 날이 일주일에 6일.
그렇게 공황발작 증상은 시도 때도 없이 날 괴롭혔다.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었고 드디어 내 발로 직접 정신과를 찾아갔다.
진료실에 앉자마자 나는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메모장에 기록한 내용을 내밀었다.
-새벽 가만히 누워있는데 두근두근거리고 바이킹 탈 때 내려오는 기분
-사람 많은 곳을 보면 손 저림 두근두근 불안한 기분
-밤에 잠드는 게 무섭다 악몽 꾸는 게 걱정
-사람들이 두렵다 (외출/전화)
-가게 점원 눈 마주치면 심장이 두근거린다
-아무 이유 없이 가만히 있어도 심장이 두근
-잠들었다가 놀라서 깸 (잠든 후 30분-1시간 이내)
-호흡곤란이 오고 손발이 저릿저릿하고 심장이 두근두근 (5분-10분 지속)
역시나 나의 병명은 공황장애였다.
그렇게 약물치료를 하게 되었고 놀랍게도 약을 먹고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이 또한 처음 겪어보는 기분이었다. 걱정이 덜했고 불안이 사라졌다.
나는 내 병을 인정하고 치료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공황장애.
누군가는 가볍게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 일수도 있지만 당사자는 이승과 저승을 왔다 갔다 하는 '병'이다.
내 병은 여전히 현재진행 중이지만 이제는 두려운 것이 없다.
맞서 싸우는 법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