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두 명의 친구가 있다.
이미 나이는 30대 후반이지만 알고 지낸 지 5년도 안 된 친구들이다.
이 친구들이 내 가치관을 바꾸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친구관계에서 늘 불안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와 친했던 친구들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늘 목소리가 크고 행동이 크고 당당했다.
아마도 정 반대 성격인 내가 그들에게 끌린 이유였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단점도 비슷했다.
바로 자신의 생각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사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적당한 배려가 있다면 세상은 나의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맞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때의 나는 남의 생각이 우선이었다는 것이다.
정반대 성향의 친구들에게는 안타깝게도 내가 갖고 있는 예민함과 세심함은 찾을 수 없었고 나는 늘 그들의 의견에 수긍하고 맞춰주었다.
그 당시에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기분보다 친구의 기분이 먼저인 아이였으니까 말이다.
친구가 혹시 기분이라도 안 좋은 날이면 내가 혹시나 뭐 잘못한 게 있을까 전전긍긍했고 마음에 없는 사과도 했다.
제일 기억나는 일은 딱히 누가 잘못한 게 아닌 그냥 서로의 의견이 안 맞아서 조금 다툰 날이었는데 그 친구의 화내는 모습이 불편하고 신경 쓰였던 나는 그 친구 집 앞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항상 친구의 기분을 살폈고 오고 가는 문자에 답장이 조금이라도 늦게 오면 내가 말실수를 했나 두근거리며 답을 기다리곤 했다.
혹시나 서로 기분이 상하는 일이 생기면 누가 잘못을 했던지 간에 먼저 사과하고 기분을 맞춰주는 쪽은 늘 나였다.
꽤 오랜 기간 친했던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처음엔 나랑 비슷한 점이 좋아서 친해지게 되었지만 결국에 그 친구도 나의 성격을 간파한 것인지 점점 자신의 기분 먼저 챙기게 되었고 그 친구의 힘든 시기를 같이 보내기까지 했지만 끝까지 자신을 기분을 챙겨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를 무시하기 시작했고 안타깝지만 30살이 넘었음에도 친구 관계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친구들은 내가 그저 착한 아이로만 기억되겠지만 나는 친구들에게 '을' 같은 존재였다.
그런 불안정한 친구 관계 때문인지 나는 늘 외롭고 혼란스러웠다.
사회에서 알게 된 지인은 딱 '아는 사람'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더 가까워졌다가는 또 과거의 인연들처럼 결과가 안 좋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정말 우연처럼 친구 두 명을 알게 되었고 밝고 유쾌한 친구들이었지만 왠지 나의 성격을 바로 간파할 것만 같아 나는 조금씩 마음의 벽을 쌓아갔다.
하지만 과거의 친구들과는 너무 달랐다.
나의 마음을 간파했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내가 생각했던 단점을 장점으로 봐주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하던 용기를 주었고, 흔들리는 멘탈을 잡아주었다.
고민이 있을 때마다 나보다 더 나의 감정을 알아주었고 해결방안까지 쿨하게 던져주었다.
나는 이 친구들이 점점 마음에 들었지만 한편으론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혹시나 이런 말이 기분 나쁘면 어쩌지'
하지만 쿨한 친구들에게 나의 예민함과 불안함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 날 바라봐주고 여전히 인간관계에서 전전긍긍하는 나의 모습을 달래주었고 때로는 이성적으로 판단을 해주었다.
이 친구들 덕분에 나 또한 많이 '쿨'해지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내가 몰랐던 나를 찾기도 했다.
혹시나 우리의 인연이 어쩔 수 없이 끝나게 되더라도 나는 이 친구들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그동안 나는 내가 인간관계를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좋은 친구도 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친구 덕분에 내가 좋은 사람이 되게 해 줬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이제야 실감이 난다.
나는 아마 두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직도 강남은 구경도 못해봤을 듯싶다
나에게 따뜻한 강남이란 곳을 이끌어준 두 친구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