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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영 Jun 30. 2023

외동딸이 운명인 엄마 유전자

딸을 외동으로 키우기로 결심한 것에 대하여

   삼십 개월 딸아이는 아빠를 닮아 체력이 무척 강하다. 아이는 길을 걸을 때면 전속력으로 질주하거나 깡충깡충 뛰어야만 즐거움을 느끼는 토끼가 되곤 한다. 또 놀이터에 가면 미끄럼틀에 있는 클라이밍을 오르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말끔하게 놓인 계단을 이용해 미끄럼틀에 올라가는 일은 클라이밍이 없는 곳이어야 가능하다. 함께 풀밭에서 놀 때면 세 잎 클로버 무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네 잎 클로버를 찾아보려는 나와는 다르다. 무성한 클로버들은 아이가 발을 헛디딜 상황에 대비해 넘어짐의 충격으로부터 보호해 줄 쿠션이다. 아이가 뛰어다닐 때 그 행복한 미소가 활짝 피어나는 만큼 긴장한 건 엄마였다. 이런 이유로 여름이 되면 아이의 무릎이 다칠 것을 염려하여 반바지나 치마를 입히는 것이 여름날 아침마다 결정해야 하는 최대 고민이다. 하루 일정에 놀이터가 있는지 체크해야 하는 것은 필수다.


  고등학생 때의 장면이 스친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학교에서 체력을 시험하는 체력장이 해마다 열렸다. 햇볕이 이글거리는 여름, 철봉에 오래 매달리거나 윗몸 일으키기를 해내는 것이 나에겐 도무지 쉽지 않았다. 그중 제일 어려운 것은 오래달리기였다. 오래달리기는 천미터를 달려 삼분 이십초 안에 들어오면 만점을 받을 수 있는 체력장의 꽃이었다. 나도 기록을 잘 받고 싶은 욕심은 있어 철봉 매달리기는 만점을 받았었다.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쳐다보는 상황에서 최대한 굴욕적이지 않은 미소를 지으며 매달려 있는 것이 더 힘들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오래달리기만큼은 쿨한 나였다. 오래달리기할 때 친구들보다 심하게 숨이 차는 것은 물론, 목에 무언가 역류한 것처럼 칼칼한 느낌을 참아내는 것은 수능 다음으로 인생의 역경처럼 느껴졌다. 그런 이유로 오래달리기는 내가 미련도 후회도 없이 포기하는 종목이었다. 포기한 것에 미련을 갖기보다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것은 인생에서 중요한 일. 오래달리기를 포기한 이후로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직장 출근할 때 지각하지 않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선다. 집에서 아슬아슬하게 출발했다간 출근 시간에 맞추기 위해 오래 달릴 자신이 없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체력이 좋은 내 아이가 오래달리기를 좋아하지 않는 엄마의 체력을 맞추느라 발랄함을 잃지 않길 바라는 엄마가 되었다. 어린이집 선생님도 인정한 아이의 남다른 체력이 날로 좋아지는 것은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아이는 삼십 개월이 되자 어린이집에서 나오는 즉시 아파트 단지 내 세 개의 놀이터를 섭렵하기 바쁘다. 집으로 들어가기까지 두 시간 반을 놀 수 있는 딸아이다. 차디찬 겨울에도 놀이터에 들러 미끄럼틀을 타고, 새들과 인사하는 것은 필수 코스이다. 이제 추우니 집에 들어가자고 하면, 딸아이는 조금만 더 놀다가 가자고 단호하게 요구한다. 아이가 뭔가를 계속 요구할 때는 우선 공감 해준 뒤, 아이의 행동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야 하는 이유를 자상한 목소리로 설득해야 한다, 같은 현명하고 훈훈한 대화 방법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어 애써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다독거렸다. 아랑곳하지 않고 미끄럼틀로 다시 올라가는 아이에게 다급하게 채근하는 말투로 언성을 높이자, 서러운 아이의 표정에서 눈물이 나오기 직전의 빨개진 눈을 보고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나보다 건강한 아이로 살아주길 그토록 바랐던 내가 딸아이가 에너지를 발산할 기회를 주지 않고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가 쉴 궁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 집에 가지 말고 산책할까?" 아이는 외출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 밖에서 놀 수 있는 것 맞냐는 듯 몇 번이고 엄마의 확인을 받아낸다.


  사실 너에게 차마 솔직하게 말은 못하지만 엄마는 집에 가서 책도 읽고 싶고, 커피도 마시고 싶어. 집에 간다고 해서 네 옆에 꼭 붙어 항상 놀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오히려 밖에서 노는 것을 싫어한다면 그것대로 엄마는 슬플 것 같기도 해. 놀이터에 가고 싶다는 건 내게 귀찮은 일이 아니라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엄마는 널 외동으로 키우려고. 너의 체력을 엄마가 기쁘게 감당해 내고 싶거든. 엄마는 서른일곱에 너를 만났고, 입덧이 심해서 임신 체질도 아닐뿐더러, 자기 일 열심히 해도 먹고 살기 힘든 현실은 둘째치고라도. 엄마는 정말 너랑 요가도 하고, 여행 다니며 글도 쓰고, 평생 둘도 없는 짝꿍으로 살고 싶단다. 물론 내가 이렇게 결심하더라도, 집에 있거나 침대 밖은 위험하다고 말하는 아이가 된다고 하더라도.


  걸음마를 시작한 이후로 내 손을 잡고 얌전하게 걸어본 적 없는 딸아이가 내 옆에 아니, 내 앞 저 멀리 뛰어가고 있다. 한낮의 무더위 속에서도 아이와 함께 뛰고, 또 뛴다. 나는 이미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고 확언하며 오늘도 아이의 체력을 열심히 감당할 것을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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