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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구 Apr 11. 2022

퇴직 즈음

이런저런 생각이 늘어난다. 닷새 후면 퇴직이다. 희망한 것은 아니지만 ‘명예퇴직’이라는 영예로운 이름으로 퇴직을 하게 된다. 어제 마지막으로 출근을 해서 필요한 행정처리를 마치고 출입증까지 반납하였다. 6월 말에 열리는 퇴임식 행사 때나 다시 들어와 볼 수 있겠지.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그마저도 어려울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다시는 회사 안에 들어올 수도 들어올 일도 없을 것이다.   

  

사무실을 돌면서 고별인사라도 나누는 것이 어떻겠냐는 권유를 고사하고 두어 명 후배들의 배웅을 받으며 문을 나섰다. 유난을 떠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성정에 맞지도 않거니와, 더러는 재직 중에 이래저래 쌓인 미안함을 채 풀어주지 못한 얼굴들을 마주 보며 덕담이라고 건네는 것도 가식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더러는 출입증을 반납하고 문을 나서는 순간 '이제 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에 울컥 치민 마음이 눈물에 섞여 나오기도 한다는데, 나는 도통 덤덤하고 담담하였다. 


30년 7개월. 뽀얗고 탱탱한 대구의 가운데 토막 같은 인생의 시기를 이곳에서 보냈다. 때로는 나를 몹시 힘들게 하기도 했지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보듬어주고, 수많은 인연을 이어주고, 지위와 직책을 맡겨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해 주고, 무엇보다도 가족의 밥줄이 되어준 고마운 곳이었다. 이제 그 울타리도 없어지고, 맺은 인연들도 점점 헐거워지겠지.   

   

지난 4개월 가까이 비교적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퇴직일이 하루하루 가까워지는데도 앞으로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았다. 저절로 눈이 떠질 때까지 잠을 자고, 산책을 하고, 가끔 여행을 했다. 딸 결혼식을 준비하면서는 자본주의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루저에 불과하다는 자괴감마저 들었으면서도 퇴직과 동시에 맞닥트릴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별반 고민을 하지 않았다.

 

내 안 깊숙한 곳의 무의식이 그동안 쌓인 심신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 같았다. 심신의 움직임을 줄여 새롭게 살아갈 힘을 키우려는 듯 한동안 길고 깊은 잠에 빠트렸다. 천성이 태평함과는 거리가 있는데 그동안 만사에 무심해진 걸 보면 무의식이 몸도 마음도 일시 세상과 단절을 시켜놓은 게 분명하다.     

 

덤덤한 일상을 되풀이하다가 문득 ‘인생 1막을 제대로 정리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생각나는 대로,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글로 써보기로 했다. 


딸의 혼사를 치르며 느낀 소감, 당근 마켓에 관한 이야기, 명상에 관한 것, 퇴직 생활에 필요하다 싶은 물건들 이야기 등등 제법 여러 편을 썼다. 읽은 책에 대한 소감도 써보았다. 생전 처음 자발적으로 쓰는 독후감이었다. 오스트리아 출신 심리학자 아들러의 『인간 이해』, 아들러 심리학을 풀어 설명한『미움받을 용기』, 속 깊은 후배가 보내준 브뤼크네르의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등 몇 권을 읽고 소감을 썼다.

    

그리고 퇴직 인사말을 썼다. 3월 말로 예정된 퇴직 일자에 맞춰 회사 인트라넷에 올릴 생각으로 이틀 전까지도 고치고 다시 쓰기를 되풀이하였다. 그동안 함께 부대낀 인연들과 일일이 작별은 못 하더라도 마지막 인사말 정도는 남겨야 할 것 같아 고심을 거듭하였다. 가식이 섞이지는 않았나, 겉멋이 들지는 않았나, 감정의 과잉은 없는가, 분량은 적당한가 등등 두루 생각하며 그저께 늦은 밤에야 2/3장 분량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런데, 출입증을 반납하고 회사를 나오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희망하지 않은 퇴직을 하면서 굳이 미련이 남은 듯한 모습을 보일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흔적도, 한 조각 미련의 기미조차도 남기지 않는 것이 나답겠다는 생각에 두 달 가까이 공들인 퇴직 인사는 끝내 부치지 않은 편지로 간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왔다. 경남 고성 상족암을 거쳐 통영과 소매물도를 돌아서 왔다. 태곳적 생명의 발자국을 보았고, 그 생명이 유영(游泳)하던 쪽빛 바다를 보았고, 그 바다와 함께 푸르렀을 하늘도 만났다. 버리고 온 것도, 비우고 온 것도 딱히 없다. 그저 파란 파도 위로 튀어 오르던 수많은 은빛 빛의 편린들만 선명하게 새겨서 왔다. 한참 동안 내 안에서 은빛 비늘이 반짝일 것이다. 

         

신분증을 반납하고 회사를 나오면서 앞을 보고, 옆을 보았다. 보이지 않던 길들이 보였다. 매일 앞만 보고 달릴 때는 내 앞의 한 길이 전부였는데, 다른 길들이 보였다. 곁길도 보였다. 문득 퇴직 인사말에 인용해 두었던 누군가의 글귀가 생각났다. “한 개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내 앞에 어떤 문이 열릴지 궁금하다. 가끔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맬지라도 기왕이면 여러 개의 문이 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만개한 산수유와 반쯤 핀 하얀 매실꽃들의 환송을 받으며 집으로 왔다.        

 

써 둔 인사말을 다시 읽어보았다.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수도 있겠지만, 끝내 내 마음속에만 간직하기로 했다. 새로운 막이 오르면 거기에만 집중하는 게 현명한 일이다. 지나간 막에 연연하여 대사를 까먹고 허둥대는 것이야말로 정말 우습고 난감한 것이니까.  


퇴직 즈음, 아직은 늦잠이 좋고, 담담하고 게으른 일상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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