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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구 Aug 06. 2022

절친한 친구이자 믿음직한 동료였던 K에게

- H.R. 맥매스터의 《배틀 그라운드》의 일독을 권함 -

오늘 드디어 맥매스터가 지은 『배틀 그라운드』의 일독을 끝냈습니다.  세세한 주석과 책 내용을 좀 더 깊이 있게 알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추천도서 목록을 포함하여 장장 700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책입니다. 지난 4월 말 선물로 받았는데, 현업에서 떠나 민간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이 읽기에는 썩 구미가 동하는 책이 아니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요 며칠 마음을 다잡고 읽었습니다.     


흥미나 재미가 있건 없건 끝까지 읽어보는 것이 선물을 준 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과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책을 선물할 때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책을 펼쳐 들었습니다.  

   

책을 읽어갈수록 맥매스터라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커졌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당시 현역 중장에서 일약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발탁되어 13개월간 재직했던 분입니다.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40년 가까이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걸프전,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90년대 이후 중동지역에서 미국이 주도한 다수의 전쟁에 고위급 지휘관과 참모로 참전한 야전 군인이자 <타임> 지가 꼽은 21세기 최고의 군사 역사학자로도 유명한 분이지요.  

    

책은 한국어판 서문을 시작으로 러시아, 중국, 남아시아(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중동(이라크, 시리아 등), 이란, 북한 등 미국의 안보, 나아가 자유 세계의 안보를 위협하는 국가 및 테러단체들에 대한 분석과 새롭게 대두하고 있는 다양한 유형의 초국가 위협 등에 대한 소개 및 결론 순으로 기술되어있습니다.   

   

제가 현업에 있을 때 매일 접하고 상대해야 했던 문제와 대상들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미국의 세계 정책 –성공과 실패를 아우르는 – 에 대해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는 것이 놀랍고 부럽고 부끄러웠습니다. 저의 느낌과 소회를 직접 경험하고 싶은 분께는 꼭 일독을 권합니다.


여기서 굳이 책의 세세한 내용을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저자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있을 때 펼쳐보지 못한 미국의 세계 패권 전략과 개인적 회한을 서술한 책은 아니라는 점은 밝혀둡니다. 군사 역사학자로서 근래 미국이 주도하고 개입한 전쟁의 성패와 미국과 자유 세계의 적들, 그리고 세계가 공통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초국가 위협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대응방안을 제시한 책이라는 정도로 말해두겠습니다.


특히, 중국의 격심한 반발 속에서도 미국이 국가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추진중인 과학기술 보호정책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어 그런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친구와 여러 후배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리라 믿습니다.     


어떤 책은 요약본만으로도, 또 어떤 책은 그저 서평이나 독후감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지만 이 책만은 꼭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시간이 없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현업에 있을 때 나는 지위가 올라갈수록, 책임과 부하들의 수가 늘어갈수록 겁이 났습니다. 그들의 눈동자를 보는 것이 겁이 났고, 나의 밑천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잘 알고 있기에 매일매일이 태풍이 부는 날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것처럼 조마조마하고 불안하였습니다. 그런 태풍 속에서 용케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친구와 같은 훌륭한 동료들과 부하들 덕분이었지요.

    

나는 세상을 보는 통찰이 부족했습니다. 역사에 대한 지식도 부족했습니다. 세상이 어떤 역학구도 속에서 돌아가는지, 와  마주앉아 있는 상대가 무슨 생각과 목적을 숨기고 있는지, 나와 우리는 세상 속에서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대국을 보지 못하고 그저 눈앞에 닥친 작은 전투의 승리를 위해 연연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앞으로도 한참동안 중요 직책에서 조직을 이끌고 업무를 수행해야 할 친구는 나와 같은 부끄러운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책의 일독을 권합니다. 당분간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에 대해 이만큼 자세히 설명해 주는 책을 찾기 어려울 거라고 확신합니다. 우리의 상대가 적인지 친구인지 구별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는 데 이만한 책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인식을 가지고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지 이만큼 자세하게 가르쳐주는 책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이 있지요. 누가 적인지, 적에 대해서 어떻게 분석하고 대비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해 주고, 나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입니다.  왜 막강한 힘을 가진 미국이라는 나라가 베트남전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똑같은 실패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통렬히 돌아보는 미국판 징비록이기도 합니다.  


현직에 있을 때, 훌륭한 리더는 통찰과 함께 숙제를 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나름 노력도 했고, 승진을 하여 부하를 거느리게 된 후배들에게도 항상 강조를 하곤 했었지요.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질문과 문제의 깊이가 곧 부하들이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됩니다. 단순히 풀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된 문제를 내주기 위해서는 부하들보다 많이 고민하고 많이 알아야 합니다. 이 책, 많은 숙제 거리를 만들 수 있는 책입니다. 함께 고민하고 풀어야 할 문제와 해법을 찾기 위한 통찰이 곳곳에 있습니다.마치 노천광산과도 같아 깊이 파지 않아도 보입니다.  혼자 읽지 마시고 꼭 동료들과 후배들에게도 일독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고 길을 찾아보길 바랍니다.     


책에 실려있는 내용은 하나하나가 먼 옛날의 전설이나 박제된 죽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불과 수십 년 전의 이야기부터 가깝게는 지금 이 시간에도 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관한 것들입니다. 대부분 우리 세대가 목도하였고, 우리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사건들이고, 여러분이 맡고 있는 일들과 연관이 깊은 것들이지요. 그래서 한 줄 한 줄이 더욱 생생하게 생명력을 가지고 있지요.      


한때 성공하였던 이야기도 있고, 실패로 끝난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 성공과 실패의 과정과 원인, 결과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독을 권합니다. 우리는 많은 실패를 알아야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실패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남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나라의 보루인 친구와 후배들에게 꼭 읽어 볼 것을 청합니다.      


지금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리더들 중 몇 분이나 이 책의 반의  반만큼이나마의 식견과 통찰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정쟁으로 날을 지새울지라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책을 읽고 고민하는 분들이 몇 명쯤은 있으리라 소망해 봅니다. 그저 저자가 말한 ‘자만심에 근거한 전략적 자아도취’에 빠져 이 나라와 국민을 이끌어 가지 않기를, 편향된 이념에 기반해서 갈라 치기 하기에 골몰하지 않기를 소망해봅니다.

    

나라의 흥망성쇠는 결국 사람의 문제입니다. 리더의 문제이고 동시에 국민의 문제입니다. 퇴직한 순간부터 일반 국민의 눈으로 리더와 나라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집단에 대해 내밀한 속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미루어 짐작만으로도 불안감이 떨쳐지지가 않습니다.

     

국민은 불안하면 각자도생을 생각합니다. 국민의 뜻을 모으고, 어려울 때 국민에게 희생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리더들이 구차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의 손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합니다.      


오랫동안 외눈박이로 살다가 이제야 비로소 나머지 한쪽 눈을 떠서 아직은 양쪽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게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레 걱정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리더는 외눈박이든 장님이든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안심을 주어야 합니다. 그 책임의 일단이 친구이자 동료인 당신에게도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표지에 인쇄되어있는 부제(副題)를 제대로 보았네요. ‘끝나지 않는 전쟁, 자유세계를 위한 싸움’. 친구가 서 있는 곳은 어디나 전장입니다. 깨어있어도, 잠들어있어도 늘 전장입니다. 나는 친구를 믿습니다. 21세 최고의 군사 역사학자이자 다양한 전쟁 경험과 세계 최강 국가의 최고 안보책임자로서의 경험을 가진 맥매스터의 통찰과 식견을 만나보세요.   

   

나와 같은 일반 시민에게는 이런 책을 읽는 것이 한갓 지적 유희나 자기만족의 일단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친구에게는 세계와 적을 보는 인식의 지평을 확대해주는 망원경이자 친절한 안내자가 될 것입니다. 왜 고민해야 하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지 일깨우는 경책으로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지인이 왜 이 책을 내게 선물하였는지 이제야 답을 찾았습니다. 나라의 문제는 리더의 문제이자 국민의 문제이니 국민다운 국민이 되라는 무언의 가르침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읽고 느낀 것이 있다면 친구 같은 사람에게 일독을 권하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이 책이 친구의 칼끝을 날카롭게 하고, 방패를 튼튼하게 하는 훌륭한 도구가 되길 바라면서 구구한 글을 맺습니다.       


                                                                                                   - 이제 막 보통시민이 된 절친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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