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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구 Jan 12. 2023

꿈은 어떻게 희망이 되는가?

새벽 1시 28분, 강화도 인근 해역에서 일어난 지진을 알리는 기상청의 긴급재난문자 경보음이 날카롭게 울리던 그 시각쯤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꿈이란 것이 대부분은 일목요연하지 못한 데다 깨고 나서 재생을 해 보려 하면 이런저런 잔상들이 덧씌워져 내가 꾼 꿈이 진짜 그런 꿈이었던가 싶어 지곤 하듯, 그날 밤 꿈 역시 맥락 없고 모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어떤 깊은 잠이라도 깨우고야 말겠다는 듯 날카롭게 울리던 긴급재난문자 경보음은 내 꿈속 깊이까지 헤집고 들어와 안 그래도 기억하기 힘든 대부분 장면을 불꽃놀이의 불꽃처럼 찰나에 흔적도 없이 날려 버리고, 겨우 두세 장면만을 비교적 선명한 기억으로 남겨 놓고는 잠잠해졌다.      


1월 초쯤 발표할 것이라던 OO재단 주관 OO채용사업 응모 결과가 이번 주 금요일쯤 발표될 예정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재단 고위층과 연줄이 닿는다는 K 선배는 벌써 암암리에 합격을 확인했다는 말이 함께 딸려왔다. 지금까지 근거 없는 낙관에 사로잡혀 평온을 유지해 오던 마음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K 선배가 지원한 학교가 공교롭게도 내가 지원한 그 학교라는 말을 듣는 순간 한겨울 차디찬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한 학교에서 뽑는 인원이라야 두세 명에 불과할 텐데 벌써 한 명이 정해진 것이라면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냉정하게 판단을 해 보면, 가망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틀이 지나도록 그날 밤 꿈의 잔상이 사라지지 않고 수시로 뇌리에 맴돌았다. 돌아가신 지 꼭 30년째인 외할머니가 흡사 성덕대왕신종에 새겨진 비천상의 천녀(天女)처럼 내게 날아 내려오시던 장면, 그리고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와중에도 커다란 염소 두 마리의 고삐 줄을 꼭 붙들고 있었던 기억. 그것이 소멸하지 않고 남아있는 그날 밤 꿈이다. OO재단의 심사결과 발표가 목전에 다가오면서 뭐라도 붙들고 싶은 간절함 때문일까, K 선배의 합격 소식에 달아오른 조바심 때문일까, 오래전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출현도 커다란 염소 두 마리를 꼭 붙들고 있던 장면도 어쩌면 내게 장차 일어날 일을 앞서 알려주는 암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에 맴돌았다.     


무료 꿈 풀이 사이트를 찾았다. 이전에도 몇 번인가 접속해 본 적이 있긴 하지만, 그것들 가운데 꿈이든 풀이든 작은 기억이라도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걸 보면 그저 그런 꿈이었던지 해몽이 별스럽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지난 것들이야 그랬다손 쳐도 이번에 꾼 꿈은 예사 꿈이 아닌 것만 같아 -예사 꿈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는 것이 정직한 심정이다- 해몽 사이트를 뒤적여 최대한 꿈속 장면과 비슷한 유형을 찾아 풀이를 읽어보았다. 나쁘지 않다! 물론 내가 꾼 꿈과 정확히 일치하는 유형이 있는 것은 아니라서 아전인수격 해몽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쁘지는 않다! 어쩌면 진짜 예지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풀이를 읽으면서 깊은 수렁으로 가라앉았던 마음이 소낙비 맞은 여름 풀처럼 목을 곧추세우며 조금씩 희망 모드로 바뀐다. “그래,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지레 좌절할 일은 아니지…….”


결론이야 미리 알 수 없지만, 앞으로 이틀간 내 초조와 조바심의 얼마쯤을 덜어낼 수 있다면 꿈이면 어떠랴. 다만 백일몽(白日夢)이 아니기를 소망해 볼 뿐.

그렇게 꿈은 소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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