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나긴 했지만, 산속 깊은 골이 아니라도 그늘진 곳이면 어디든 어김없이 잔설이 남아있어 ‘봄이 왔다’ 하기에는 어림없고, ‘봄이 오고 있다’ 정도도 겨우 무색을 면할까 말까 한 날씨였다. 그나마 시나브로 길어진 해가 있어 오후 4시가 넘은 시각에도 잿빛 산이 환하였다.
모처럼 산에 올랐다. 얼핏 눈에 띈 길섶 생강나무꽃 봉오리가 개암 알갱이처럼 볼록했다. 이 추위에 벌써 물이 올랐을 리는 없고, 모진 겨울을 나느라 단단히도 껴입었나 보다 생각하며 가까이 가 보았다.
막 탈각(脫殼)을 끝낸 듯 가지 위에 살짝 걸친 금빛 겉껍질 하나가 낙화처럼 떨어질 찰나였다. 급히 사진 몇 장을 찍었다. 갓난아기 새끼손톱만 한 것이 참 앙증맞았다. 볕을 받아 그런 것인지 애초부터 그러한 것인지, 껍질은 금빛을 머금고 있었다. 어느 곳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정교한 스테인그라스의 파편 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간절한 소망을 담았던 작은 연등의 한 조각 같기도 했다,
찬찬히 둘러보니 어느새 절반도 넘는 봉오리들이 잔망(孱妄)스런 깃털 옷으로 치장을 끝내놓고 있었다. 나머지 것들도 조금씩 부풀고 있었다. 껍질이 벗겨지며 드러난 그 잔망스런 깃털은 순한 골든 리트리버의 가슴과 귀를 덮은 털처럼 가늘고 부드러웠다. 부드럽고 앳된 것이 참 귀엽고 얄미워 잔망스럽단 말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떨어지기 직전의 껍질들은 금빛뿐 아니라 붉은빛도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찬란한 성장(盛裝)이다. 이들의 멀어짐은 찬란하였다.
바람 한 점 없는데도 껍질이 벗겨지는 걸 보면 혼자 새끼를 낳는 야생의 것들처럼 저 혼자 힘으로 그리 한 것이 틀림없다. 살갗을 찢은 것인지 혹은 밀어 올린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어쨌든 제 살 한 꺼풀을 벗겨낸다는 것은 두렵고 고통스러운 일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용기가 어디서 솟는지 궁금해졌다.
누가 보아도 아직은 봄이 먼데, 겁 없이 망토를 벗어젖히는 걸 보면 남모르는 소식이라도 들은 모양이다. 아니, 해마다 산 꽃 중 제일 먼저 피는 것으로 미루어 화신(花神)의 총아(寵兒)이거나, 매화꽃과 함께 봄의 전령사(傳令使) 같기도 하다.
한 송이가 금빛으로 빛났다. 빛이 나는 정도가 아니라, 숫제 황금 꽃이다. 산의 정수(精髓)가 아니라면 분명 태양의 빛 중 금빛만을 고르고 골라 뭉쳐놓은 빛의 정수임이 분명하다.
몇 겹을 벗겨내야 꽃이 되는지 알지 못한다. 어쩌면 저 잔망한 털옷까지 벗어던져야 할 것이다. 다만, 어떤 꽃들-특히 목련이나 매화, 산수유 등 꽃 몽우리 채로 겨울을 나야 하는-은 매미나 잠자리처럼 껍질을 벗어야만 비로소 꽃이 되는 것만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 껍질이 스테인그라스처럼 화려할지라도, 연등처럼 고귀할지라도 미련 없이 저 스스로 떨쳐내야만 비로소 꽃으로 필 것은 자명하다.